네타냐후 “총선 승리 땐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 합병할 것”

입력 2019-04-08 04:0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공화당·유대인 연합 행사에서 주먹을 들어 보이며 청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뉴시스

이스라엘이 9일(이하 현지시간)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120석의 주인을 정하는 총선을 치른다. 유대 민족주의 성향을 보여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중도좌파연합 ‘블루 앤 화이트(Blue and White)’ 대표 베니 간츠가 박빙의 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잇단 부패 스캔들 속에서도 5연임을 노리는 네타냐후 총리가 당선되면 ‘중동의 화약고’인 팔레스타인 지역의 긴장감이 다시 한번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합병하겠다고 밝혔다고 일간 하레츠가 6일 보도했다. 서안은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해 빼앗은 땅이다. 이스라엘군 보호 아래 이스라엘인 40만여명이 정착촌을 건설해 거주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점령한 땅에 정착하는 것을 금지한 제네바 협정을 어겼다고 비판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아예 서안의 일부 혹은 전체를 합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즉각 반발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어떤 조치나 어떤 발표도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며 “정착촌은 불법이며 이는 곧 제거될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의 이번 폭탄 발언은 총선 전 마지막 여론조사가 발표된 다음 날 나왔다. 이스라엘 채널13 방송이 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과 군 참모총장 출신인 간츠가 이끄는 블루 앤 화이트는 이번 총선에서 각각 28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렴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정치 신인 간츠가 14년간 4번이나 집권한 네타냐후 총리와 어깨를 견주고 있는 것이다.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 네타냐후 총리가 극우 유권자들의 지지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서안 합병 등 극우 민족주의 공약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가 군소 극우정당과의 연정을 의식해 민족주의 공약을 앞세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체 의석이 120석인 이스라엘에서는 단 한 번도 단독정부가 구성된 적이 없다. 리쿠드당도 우파 및 종교 정당 7~8곳과 성공적으로 연정을 구성해야 66석을 확보해 중도좌파를 누르고 과반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부패 혐의로 우파 내에서도 신망을 잃었다. 아비차이 만델블리트 법무장관이 지난 2월 그를 뇌물수수와 사기, 배임 혐의로 기소하겠다고 밝힌 것이 결정타였다. 우파 정당들은 블루 앤 화이트를 지지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네타냐후 총리를 지지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리쿠드당에서 독립한 극우정당 제후트당 역시 어느 쪽을 지지할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총선에서 단독으로 확보한 의석이 블루 앤 화이트보다 한 석만 모자라도 연정 구성 권한 자체를 잃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총선 직후 대통령이 연정구성 가능성이 큰 당수를 총리 후보로 지명하고 연정구성권을 준다. 블루 앤 화이트가 총선에서 최다 의석을 확보하면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이 간츠 대표에게 먼저 연립정부 구성권을 부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믿는 구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공화당·유대인 연합 모임에 참석해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주권을 인정토록 한 조치에 대해 “신속하고 좋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현지언론들은 이를 트럼프의 ‘즉석 결정’이었다고 표현했다. 이스라엘은 3차 중동전쟁에서 시리아로부터 골란고원을 빼앗았으나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서안과 골란고원에 대한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쪽이고 간츠 대표는 국제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주권을 인정하는 포고령을 발표하면서 네타냐후 총리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