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달리기 시작한 ‘코끼리(인도)’로 눈 돌리는 은행들

입력 2019-04-08 04:02

인도 시장 잡기에 나선 이는 자주색 터번을 두르고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그룹 회장 일가의 결혼식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뿐만이 아니다. 신시장 개척에 골몰하는 국내 시중은행도 시선을 인도로 돌리고 있다. 13억명의 인구, 7~8%대의 높은 경제성장률, 개혁개방 기조로 ‘다시 달리는 코끼리’가 된 인도의 모습에 주목한 행보다.

7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6곳, 우리은행은 3곳, KB국민은행·KEB하나은행·IBK기업은행은 1곳씩의 지점을 인도 현지에 두고 있다. 이 가운데 KEB하나은행은 최근 인도 중앙은행 인가를 얻어 올 하반기에 2호점인 구르가온 지점을 신설할 예정이다. 지난 2월 1호점을 낸 KB국민은행은 2022년까지 2호점, 3호점을 진출시킬 계획이다. 인도 진출이 늦었다고 판단한 NH농협은행은 현지에 전문가를 파견해 시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은행권은 “인도는 큰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아직 통장을 가진 인구가 20% 미만”이라고 입을 모은다. 개척의 여지가 많고 수익성이 높을 것이라는 판단은 전통적 제조업과 금융업이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도 시장을 두드려온 이유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인구의 절반에 못 미치기 때문이었다. 인도가 2020년대에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자동차업계의 인도 지역 협력 강화로 이어졌다.

아직 영업이 본격화한 단계가 아니지만 인도 진출의 효과는 충분히 인식되고 있다. 1996년 뭄바이에 첫 지점을 설립하는 등 국내에서 가장 많은 지점을 인도에 진출시킨 신한은행 사례가 대표적이다. 신한은행은 “2017년 이후 현지 리테일(소매) 대출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말 현재 인도에서의 대출금은 8억8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18%가량 늘었다.

최근 대출 증가는 점점 활성화하는 인도 경제를 방증한다. 인도는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집권한 이후 제조업 확대, 일자리 확충을 위해 개방정책을 펴고 외국 자본 유치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후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으로 관리됐고 경상수지는 흑자다. 경제성장률은 해마다 연평균 7%를 웃돈다.

‘가치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지난해 인도의 전자결제 업체 페이티엠(Paytm)에 3000억원대 투자를 했고, ‘신흥국 투자 전문가’ 마크 모비우스는 “유가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 큰 나라”라며 인도 포트폴리오 확대를 공언했다.

한때 ‘크고 느린 코끼리’라 조롱받던 인도 경제는 이제 ‘달리기 시작한 코끼리’로 불린다. 새로운 비유를 만든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인도 국내총생산(GDP)이 영국과 프랑스를 따돌리고 세계 5위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활발해지는 국내 기업의 인도 투자도 은행권의 발길을 재촉한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인도 투자액은 사상 최고치인 10억5200만 달러였다. 2017년(5억1600만 달러)의 2배 수준이다.

임성식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인도 뉴델리무역관 과장은 “2014년만 해도 ‘기업환경 용이성 평가’에서 142위였던 인도가 올해 77위가 됐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이 진행하는 이 평가는 해당 국가에서 기업이 얼마나 활동하기 좋은 환경인가를 따진다. 임 과장은 “이 순위만으로도 인도에 대한 세계 기업의 관심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