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힘은 못 보탤 망정 ‘네 탓’ 공방할 때인가

입력 2019-04-08 04:01
강원도 고성 산불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초대형 재난이다. 인명 피해는 물론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고,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혔다. 그나마 정부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처와 소방 관계자의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적인 노력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산불을 잡은 지금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해 이재민을 지원하고,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만반의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5일 피해 현장을 찾아 “산불 피해가 심각하다. 각 당이 정쟁을 멈추고 피해 방지와 신속한 지원을 위해 지혜를 모으자”고 정치권에 제안했다. 지극히 당연한 제안이다. 미증유의 재난 앞에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재민의 아픔을 보듬는 게 먼저다. 잘잘못을 따지는 건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황 대표 제안은 채 하루도 안돼 허언이 됐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문재인정부가) 촛불 좋아하더니 온 나라에 산불”이라고 비아냥거렸고,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화재가) 북으로 번지면 북과 협의해 진화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빨갱이 맞다”고 뜬금없는 색깔론을 펼쳤다. 한국당은 부인 환갑 기념 가족 제주 여행으로 속초시를 비운 속초시장의 현장 부재까지 문제 삼았다. 가만히 있을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다. 민주당은 국가 재난 상황에서 그 책임자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국회에 붙잡아 놓은 한국당의 책임론을 부각시키고 있다.

황 대표 지적대로 지금은 모두가 지혜를 모아 2차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 수습 대책 마련을 서두를 때다. 정부는 고성 등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본격적인 지원 체제에 돌입했다. 민간 차원의 도움도 쇄도하고 있다. 정치권이 이런 대열에 동참하진 못할망정 훼방이나 해서야 되겠는가. 여야가 피해 복구와 이재민에게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비생산적 정쟁을 할 시간은 있고 머리를 맞대고 함께 대책을 논의할 시간은 없는 모양이다. 국회 고성연수원을 이재민에게 개방한 걸 제외하면 정치권이 칭찬받을 일이 없다.

산불이 꺼졌다고 피해까지 멈춘 게 아니다. 산불로 생계수단을 잃거나 관광 수입이 감소하는 등의 2차 피해가 예상된다. 피해 복구 및 수습 못지않게 2차 피해 예방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민간 차원의 각별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이번 산불을 계기로 필요성이 입증된 소방관의 국가직화를 위한 국회 입법 절차도 서둘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