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안정만으론 생존 못한다”… 디지털 바람 거센 은행들

입력 2019-04-05 04:01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지난달 26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디지털 관련 직원들은 ‘유목민’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보기술(IT) 담당자를 영업점에 배치해 고객과 만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혁신을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취지였지만, 진 행장의 발언에 은행 안팎은 술렁였다. 관행을 깨는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디지털 전환’이 금융권 이슈로 대두되면서 알게 모르게 은행권 전체에 스트레스가 쌓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안정(安定)’ ‘보수(保守)’의 대표주자인 은행산업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섰다. 디지털 격랑 속에 채용 방식과 조직 구성, 근무 형태 등 관습을 뜯어고치고 있다. 외부 IT 전문가를 영입해 디지털 전략의 중책을 맡기는 일도 잦다. 시중은행의 한 디지털 담당 직원은 4일 “내가 은행에 다니는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다니는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일 윤진수 전 현대카드 상무를 데이터전략본부장(전무)으로 영입했다. 데이터 담당 임원에 외부 인사가 오기는 처음이다. 윤 전무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석·박사를 마친 ‘빅데이터’ 전문가다. 삼성전자와 삼성SDS에서 데이터 분석 업무를 담당했고, 현대카드에서도 빅데이터 분석을 맡았었다.

외부 수혈은 어느덧 은행권에서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지난해 6월 최고디지털책임자(CDO)로 황원철 전 하나금융투자 상무를 데려왔다. 이어 지난 3월에는 우리금융의 디지털 전략을 총괄하는 ICT기획단장으로 노진호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를 영입했다. 신한은행은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15년 넘게 근무한 빅데이터 전문가 김철기 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와 인공지능(AI) 전문가 장현기 박사를 각각 빅데이터센터 본부장, 디지털전략본부장으로 채용했다. IT부서 사무실을 본점과 별도 공간에 마련하고 독립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진 ‘애자일’ 조직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디지털 바람’은 차츰 은행권의 채용 풍경도 바꾸고 있다. 은행들은 앞 다퉈 “디지털 마인드를 가진 인재를 뽑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공개채용 대신 수시채용이 일반화된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지금은 금융 당국의 ‘일자리 확대’ 독려에 은행들이 해마다 수백명을 공채로 뽑고 있지만, 이제는 필요에 따라 수시로 선발하는 식으로 달라질 수 있다.

디지털 흐름 속에 일본 은행들은 이미 인력 감축에 돌입했다. 일본 3대 대형 은행(미쓰비시UFJ·미쓰이스미토모·미즈호은행)은 최근 내년도 상반기 신입 채용을 올해보다 약 30% 줄인 1680명 수준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가장 적은 규모다. 4년 전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초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일본 은행들은 비용 절감을 위한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즈호은행은 장표 관리 등의 사무 업무는 인공지능(AI), 로봇에 맡기는 업무 자동화(RPA)를 추진 중이다. 자동화를 통해 사무직 채용 규모를 올해보다 20% 줄일 계획이다. 국내 시중은행 관계자는 “머지않아 은행원들도 보험설계사처럼 현장에 나가 직접 고객을 찾아다니며 영업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