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품어 온 감독의 꿈을 이루셨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실감이 안 나요. 개봉하면 극장에 가서 관객들 틈에 껴서 몰래 보려고요.” “배우로 출연한 작품도 그렇게 관람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웃음). 연출작은 시사회 때 보는 걸로 만족이 안 돼서….”
배우로서 마주했던 그가 아니었다. 언제나 묵직한 여유를 내뿜던 그이건만 이번엔 풋풋한 긴장감이 묻어났다. 출연작 개봉을 앞뒀을 때와 비교하면 딱 10배 정도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첫 연출작 ‘미성년’을 내놓은 신인감독 김윤석(51)을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윤석은 “연극 연출을 해봐서 늘 영화 연출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며 “관객들에겐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동안 묵묵히 준비 작업을 해 왔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됐을 무렵, 운 좋게 이 작품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2014년 12월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 한 편을 보고 단숨에 영화화를 결심했다. 작품의 독특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원작자인 이보람 작가와 함께 수년간 각본 작업에 매달려 시나리오 최종고를 완성했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미성년’은 여고생 주리(김혜준)와 윤아(박세진)가 각자의 아빠(김윤석)와 엄마(김소진)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두 가정이 격랑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흔한 소재이지만 ‘어른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주제를 확장해나가는 솜씨가 유려하다.
섬세하고도 유머러스한 연출이 돋보인다는 평가에 대해 그는 “모르셨나. 저를 아는 사람들은 다들 ‘김윤석답다’고 얘기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형사도 깡패도 히어로도 등장하지 않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잖아요. 디테일하게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김윤석은 “이 영화의 무기는 배우들”이라고 단언했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가정을 지키려 분투하는 엄마 영주 역의 염정아를 비롯한 네 명의 여성 배우들이 균형을 이루며 극을 지탱한다.
김윤석은 바람난 남편 대원 역으로 출연도 했다. 기능적인 역할이어서 다른 배우에게 맡기기가 미안했단다. 그는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이란 뜻의 대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캐릭터에 익명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대변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연출을 해보니 연기를 대하는 시야도 넓어졌다. “카메라 앞에 서있는 것과 뒤에서 바라보는 건 굉장히 다른 경험이더군요. 새로운 게 보여요. 해당 장면에서 획득해야 하는 것들이 뚜렷하게 보이는 거죠.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차기작은 미정이나, 어떤 작품이 됐든 평범한 사람의 비범한 순간을 담고 싶다고 그는 얘기했다. 앞으로도 연기와 연출을 병행해나갈 계획이다. “둘 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거든요. 한데 ‘미성년’이 연출 은퇴작이 될지 누가 알겠어요. 이번에 잘돼야 다음 기회도 생길 텐데(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