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KBS 1TV 교양 프로그램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 전파를 타자 방송가 안팎에서는 호평이 이어졌다. 방송은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KBS 우수 프로그램상’ 등을 거머쥐었다. 급기야 중국에서도 연락이 왔다. 프로그램의 포맷을 구입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그렇게 이 프로그램은 국내 교양 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해외에 포맷이 수출되는 기록을 세웠다.
최근 서울 여의도 KBS에서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명숙(42·사진 왼쪽) PD와 길다영(30·오른쪽) PD를 만났다. 김 PD는 “중국에서 만든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현지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와 상하이 동방위성TV를 통해 이달 말부터 방송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유럽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포맷 구매를 문의하는 연락이 오고 있다”고 했다.
2회에 걸쳐 방영된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경증 치매를 앓는 노인 5명이 음식점을 차리고 영업에 나선 내용이었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출연자들은 어떤 주문을 받았는지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치매라는 질병을 어둡게 조명하거나, 노인을 희화화한 구성은 아니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치매라는 질병에 접근한 게 주효했다.
길 PD는 “치매가 무서운 병이긴 하지만 함께한다면 치매와 싸우는 과정이 덜 두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다”고 자평했다. 김 PD는 “치매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건 관심을 갖는 아이템”이라며 “이 문제를 유쾌하고 편하게 그렸다는 점, 그러면서 치매에 대해 생각해볼 지점을 되새기게 했다는 게 좋은 반응을 얻은 요인일 것”이라고 했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방송 직후 격찬을 받았지만 동시에 잡음에 휩싸이기도 했다. 일본 NHK에서 방영된 콘텐츠를 베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라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었다. 김 PD는 “일본에서 치매 노인들이 음식점 영업에 나선 일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벤트성 행사였다”고 했다. “분명한 건 NHK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든 일 자체가 없다는 거예요. 이런 소문은 꼭 바로잡고 싶어요.”
방송은 끝났지만 온라인이나 다시보기(VOD) 서비스를 이용하면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다. 김 PD는 인터뷰 말미에 방송에서 음식점 지배인 역할을 맡았던 방송인 송은이가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녹화를 마치면서 송은이씨한테 ‘치매와 친해졌느냐’고 물었어요. 송은이씨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치매와 친해지진 않았다. 하지만 치매를 두렵게만 여기진 않을 것 같다.’ 저한텐 이 말이 정말 각별하게 여겨지더군요. 방송을 보신다면 치매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