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내부에서 인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은 꽤나 다양하다. 덮어놓고 따라 하는 무분별한 수용부터 ‘교회에서 무슨 인문학이냐’며 무조건 거부하기까지 극단적으로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분명한 것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바로 그 질문에 철학자 김용규만큼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IVP)라는 120쪽짜리 책을 펴낸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책 집필과 강연을 제외한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고, 최근엔 전주에 머물고 있는 그를 지난 2일 서울 청파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본의 아니게 20여년간 세상과 등지고 지냈다”며 꽤 오래간만에 인터뷰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책에서 기독교 신학이 2000년간 어떻게 서로 대립하는 요소들을 통합하고 융합하면서 축적돼 왔는지 설명한다. 지난해 큰 관심을 모았던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란 부제가 달린 대작, ‘신’(IVP)의 내용을 압축해 보여주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독교의 시대적 역할을 강조한다.
근대를 넘어 탈근대에 접어든 세상에서 기독교는 거의 전근대적 종교로 치부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진리 선함 아름다움 정의 생명 등의 근원적 가치들이 근대에 들어와 전복되고 배제되면서 신본주의적 가치는 구태의연한 것, 심지어 해로운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며 “근대사회가 추구했던 인간 이성에 대한 숭배와 무한한 자유, 무차별적인 평등의 결과 자연과 인간 사회가 모두 파괴되는 극단적 상황을 거쳤다”고 진단했다.
세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신본주의적 가치는 물론 인본주의적 가치마저 모두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도달해있다.
그는 “현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착취적인지 생각할 동력이 사라지고, 사회 개혁을 위해 필요한 인간의 연대 등의 가치가 모두 근대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치부되는 등 적잖은 부작용이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전적으로 잘못됐고, 기독교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는 “2000년 동안 형성된 기독교 신학은 성서의 계시와 시대의 인문학, 신앙과 이성,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즉 서로 이질적이고 때로 상반되는 둘이 만나 빚어낸 거대하고 아름다운 정신적 구조물임을 볼 수 있다”며 “서로 대립 충돌하는 신본주의 가치, 인본주의 가치, 탈근대적 가치를 모두 통합해 ‘온전한 가치’를 정립하는 데 기독교 신학만 한 이론체계가 없다”고 했다.
기독교야말로 모든 것을 통합하고 융합을 이뤄낼 수 있는 논리 지혜 경험 지식이 축적된 결정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가장 아래에 신본적 가치, 그 위에 인본주의적 가치, 가장 위엔 포스트모더니즘적 가치가 올려져 있는 삼단 케이크에 빗대 설명했다. 그는 “신본주의적인 가치가 파괴되면 인본주의적 가치도 파괴된다”며 “결국 인간이 살려면 신본주의적 가치를 살려내야 하며 하나님부터 다시 불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더 구체적으로 한국교회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물었다. 자기 생각을 신중하게 들려주던 그는 이 질문 앞에서 말을 아꼈다. 그는 “세상사를 잘 판단하기 어렵고, 밖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개인적인 소망”이라는 단서를 붙인 뒤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손으로 잡아 그것을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과 사회에 새로운 삶의 비전으로 던져주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대교회 당시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했던 이방인 여성 노예 어린아이 등을 구분 없이 받아들여 환대하고 포용함으로써 그들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비전을 제시했듯, 교회는 시대마다 그런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는 늘 그 시대 사람들의 개인적 또는 공동체적 삶을 억압하고 저해하는 장벽들을 뛰어넘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성장해왔다”며 “한국교회도 사역의 방점을 여기에 둔다면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