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가 낸 주한미군 분담금 왜 주일미군이 쓰나

입력 2019-04-05 04:03
주한미군 경비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국 부담이 원칙이다. 다만 주한미군이 우리 국방의 일부를 담당하는 만큼 양국 합의를 거쳐 우리나라도 분담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으로 우리가 미국에 지불하는 방위비 분담금이 올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 이전에 비해 8% 오른 것으로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5년 단위로 해오던 방위비 협상을 올해부터 1년 단위로 바꿈으로써 내년에도 우리 측 분담금 규모를 둘러싼 미국의 고강도 압박이 예상된다.

주한미군은 그 존재만으로도 전쟁 억지력 효과가 대단하다. 우리 측이 기꺼이 조 단위 분담금을 지급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분담금이 주한미군이 아닌 엉뚱한 곳에 쓰였다면 우리는 왕서방 장단에 재주를 부리는 곰 신세와 다를 바 없다. 국방부가 최근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제9차 방위비분담 협정 기간 동안 1000억원 가까운 분담금이 주일미군 지원에 쓰였다. 주일미군 F15 전투기와 HH60 헬기 정비 지원에 954억여원이 쓰였다고 한다. 9차 방위비분담 협정 발효 뒤 체결된 군수분야 이행합의서의 ‘보수 및 정비 업무’ 조항에 따른 것이란 게 국방부 설명이나 SOFA의 근본 원칙이 훼손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국회 비준 동의 범위를 벗어난 예산의 목적 외 사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올해엔 지난 2월 양국이 합의한 제10차 방위비분담 협정이 적용된다. 직전까지 미군이 부담하던 전기·가스·상하수도 요금 등을 올해부터 우리 측이 부담한다. 그런데도 미군 측은 화장실 청소 및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우리 측에 떠넘기려 한다는 소식이다. 안보를 이유로 응당 미군이 지불해야 할 비용마저 전가하는 건 슈퍼 파워의 갑질이다.

한·미 관계는 동맹 차원을 넘어 혈맹에 비유된다. 미 백악관은 “한·미동맹은 동북아 안정과 안보의 린치핀(linchpin)”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를 상대로 안보 장사를 한다. 정부가 저자세로 일관하면 미국의 요구는 갈수록 거세질 것이다. 일관된 원칙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