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여행을 할 때 사진에 얼마나 공력을 들이는가? 이 질문의 답은 사람마다 판이하다. 내 주변만 보아도 숨 쉬듯 사진을 찍는 친구들도 있고 여행 내내 카메라 앱 한 번 열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전자의 친구들은 낯선 장소로 이동할 때마다, 혹은 새로운 음식이 나올 때마다 홍조 띤 얼굴로 그것을 프레임에 담아 영원히 간직한다. 후자의 친구들은 사진을 찍을 여력을 그 시공간에 녹아드는 데 써버리고 차려진 음식 앞에선 주저 없이 포크부터 뻗는다.
나의 경우 그 모든 시기를 다 거쳤던 것 같다. 부모님 혹은 선생님 같은 인솔자를 따라다니던 ‘견학’ 시기를 지나, 내가 본격적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하기 시작했던 무렵엔 DSLR 카메라가 흥했다. 나 역시 그 크고 묵직한 장비를 마련해서 여행 내내 끼고 다녔다. 셔터 스피드니, 노출값이니, 감도니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숫자를 읊조리며 근사한 사진을 찍는 데 몰두했다. 여행을 마친 후 그렇게 담아온 사진들을 보정하고, 분류하고, 게시하고, 저장하며 지나간 여행이 나의 역사로 영구 보존됨에 감격하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카메라가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고가품인 데다 무게도 만만치 않은 그 사물을 애써 챙겨간 이상 뭐라도 찍어야 하는데, 그 생각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가슴 벅차게 아름다운 장소에 가도 온전히 그 순간을 즐기기보다 ‘아, 이걸 찍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부터 치밀었다. 하지만 막상 나의 프레임에 담긴 사진은 언제나 실제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그 사진 속엔 불순물 같은 관광객-같은 처지임에도 이런 표현이라니-들이 픽셀을 좀먹고 있거나, 실물보다 초라하고 납작해진 풍경이 비뚜름한 구도로 담겨 있곤 했다.
마침내 나의 값비싼 카메라는 프랑크푸르트역 어느 소매치기의 현란한 손재간으로 새 주인에게 떠나갔고 그날 이후 나는 여행가방에 카메라를 굳이 챙기지 않게 되었다. 그사이 휴대전화 카메라가 눈부시게 발전한 탓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기록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1초라도 더 현장감을 만끽하고, 그 모든 순간을 오직 눈으로 찍어서 마음에 현상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나는 사진과 멀어졌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점점 빈궁해지는 나의 두뇌 용적이었다. 여행 데이터가 쌓여갈수록 나는 그 레몬빛 햇살을 만끽했던 바다가 보홀이었는지 보라카이였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 향긋한 와인을 마셨던 곳이 리스본인지 세비야인지 혼동되기 시작했다. 이때 떠올린 것은 먼 옛날 보았던 디지털 카메라의 광고 카피였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아직도 감탄하게 되는 멋진 문구로 여기엔 삶의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기록하는 대로 기억하기 마련이라는 사실. 유치원 학예회에서 찌부러진 얼굴로 울고 있는 나의 사진을 보며 그날의 무대 공포를 떠올리는 것이고, 꽃지 해수욕장 갯벌에서 온 얼굴에 흙을 묻히고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며 그 시절의 행복감을 반추하는 것이다. 사진 한 장 찍어오지 않은 여행은 놀랍게도 나의 역사임에도 거대한 괄호처럼 공란으로 남는다.
그래서 이제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 행동하게 되었다. 기록 강박에 사로잡히고 싶진 않지만 기록 유실은 허망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새로이 만든 나만의 여행사진 룰은 별것 아니다. 여행지에서 장소를 이동할 적마다 우선 사진을 찍는다. 열성적으로는 아니고 훗날 이 순간을 떠올릴 때 단서가 될 만한 편린들을 수집한다. 인화할 것도, 어디에 게시할 것도 아니므로 그렇게까지 공들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촬영을 해치우고 휴대전화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다시는 꺼내지 않는다. 그렇게 속 편하게 현장에 녹아든다. 끝.
이 새로운 룰을 가지고 몇 번의 여행을 했다. 요즘도 종종 그 여행들이 그리울 적마다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어보곤 한다. 누군가가 보기엔 빈약하기 짝이 없는 기록물이다. 그럼에도 기억을 복기하는 데는 충분하다. 그 단서들의 징검다리를 훑으며 그때의 감각에 빠져든다. 마치 르포 기자처럼, 기록용 사진을 삽시간에 찍어대고 바로 퇴거하는 방식. 지나치게 촬영에 몰두해 현장의 감동을 놓치는 우를 범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기록과 함께 기억마저 상실하고 싶지 않은 나의 적당한 타협점이라고 생각한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