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때 김학의 임명을 막지 못했나?’ 더불어민주당이 김 전 법무부 차관의 성범죄 의혹을 두고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겨냥하는 논리는 단순명쾌하다. ①2013년 3월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 전 차관 내정을 발표했다. ②황 대표는 당시 법무부 장관(3월 11일 취임)이었으므로 김 전 차관의 성폭력 의혹을 모를 리 없었다. ③고로 성범죄 의혹 인사의 차관 임명을 묵인한 황 대표는 정의롭지 않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27일 본인 청문회에서 이 논리구조에 입각해 ‘김학의와 황교안 커넥션’을 들춘다. 그런데 그 청문회 자리에서 박 후보자가 황 대표를 겨눈 정의의 삼단논법은 박 후보자에게도 되돌아온다.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 “김학의 전 차관 사건 당시, 법사위원장이셨죠? (중략) 성폭력 내지 성접대의 의혹들이 가시지 않았는지 (확인)했어야 되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법사위원장으로 일을 제대로 못한 것 같다, 이런 생각 안 듭니까?”
박 후보자: “그렇게 지적하니시까, 또 그 말씀도 맞는 것 같습니다.”
민주당의 ‘정의론’으로, 당시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장이었던 박 후보자의 책임을 되묻는 아픈 질문이다. 박 후보자는 짧은 반성 뒤, 공세로 전환한다.
“(2013년 3월 13일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 앞에서 ‘제가 동영상을 봤는데 몹시 심각하기 때문에 이 분이 차관으로 임명되면 이것은 문제가 굉장히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법사위원장실에서 따로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법사위원장의 책임은 다했다는 자기면책인 동시에, 야당을 향한 역공이다.
박 후보자는 본인 스스로 “법사위원장으로서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를 다른 사람보다는 좀 소상히 알고 있다”고도 했다. 법무부 차관이 여성을 강간한 의혹, 그 동영상을 보고 사건을 소상히 알고 있는 법사위원장. 그런데도 이 권력형 성범죄는 장관에게 구두경고 후 별 일 없이 넘어갔다. 박 후보자는 각종 청문회에서 공직 후보들을 낙마시킨 ‘저격수’였다. 그 저격수의 탄환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때,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았다. 박 후보자에게 ‘김학의 동영상’을 전달했다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당시 상황과 관련해 “박 의원이 저한테 전화로 낄낄거리면서 ‘황교안 장관한테 (김학의 동영상) 이야기를 했더니 얼굴이 빨개지더라’고 이야기를 하더라”라고 했다.
김 전 차관은 2013년 3월 21일 사퇴했다. 내정 발표 8일, 취임 6일 만이었다. 야당의 공론화가 아닌 경찰 수사와 언론의 실명 공개가 결정타였다. 6년이 지난 지난달, 박 후보자는 본인 청문회에서 상대를 저격하는 수단으로 김 전 차관 문제를 다시 꺼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인가. 나에게 유리하게 편집된 정의도 정의인가. 당시 상황을 소상히 아는 여권 관계자에게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땐 왜 그냥 넘어갔느냐”고 물었다. “지금은 미투(Me too)때문에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그때만 해도 ‘배꼽 아래’ 문제에 대해서는 정색하고 문제 삼기 어려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학의 사건은 실체가 비교적 명확하다. 공소시효 문제가 남아 있지만 대대적인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처벌이 불가능하진 않아 보인다. 이런 성폭력 사건을 답이 없는 공방으로 변질시킬 때, 정치는 타락한다. 정치가 당파적 이해에 따라 파편적인 사실만 흩뿌릴 때, 진실은 가려진다. 특정 정당이 정의를 독점하고, 선악의 심판관을 자처할 때 진실 규명은 한낱 정쟁거리가 된다.
김 전 차관의 임명을 막지 못한 책임 순서에 따라 일렬로 줄을 세운다면 당연히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맨 앞자리에 서야 한다. 그 다음엔 당시 청와대 검증 라인이다. 박 후보자와 황 대표는 어디쯤 설 수 있을까. 그러므로 다시, 이 질문은 황 대표만큼이나 박 후보자와 민주당에 돌아가야 한다. ‘왜 그때 김학의 임명을 막지 못했나?’
임성수 정치부 차장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