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이 되면 포항 호미곶, 강릉 경포대, 부안 변산반도 등 각 지역 명소는 늦은 밤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새해 첫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망망대해를 뚫고 올라오는 붉고 둥근 태양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거나 소망의 기도를 올린다.
이들의 모습은 각자 달라도 새해에 큰 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밤공기를 헤치고 이른 새벽에 바닷가까지 달려왔다고 해서 복을 받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넓은 바다나 붉은 태양이 우리에게 복을 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넓은 바다를 만드시고 붉은 태양을 만드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으로부터 온갖 좋은 것이 나온다.(약 1:17) 포도나무 가지가 그 나무에 붙어 있으면 진액을 빨아들여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께 붙어 있으면 예수 생명의 진액을 빨아들여 온갖 좋은 열매를 맺으며 복을 누리게 된다.(요 15:4~5) 그것이 바로 생명사역이다. 우리가 생명사역을 전개해 나갈 때 온갖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망(大望)을 품고 그 대망을 이루기 위해 야성(野性)을 품어야 한다. 이것이 대망과 야성을 품은 생명사역자의 참된 모습이다.
대망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새 일을 행하시는 것을 믿으며 가슴에 품는 큰 비전을 의미한다. 야성은 자기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 일에 순종하는 열정과 끈기를 의미한다. 요약하자면 대망은 ‘믿음의 비전’이고, 야성은 ‘순종의 열정’이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한다. 대망만 있다면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게으르고 어리석은 사람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 대망만 있고 야성이 없으면 과대망상에 빠지게 된다. 반대로 야성만 있고 대망이 없으면 목표 없이 열정만 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 된다.
예수께서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대망을 품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마 1:21) 예수께서는 대망의 비전을 위해 달려가셨기 때문에(요 17:1) 십자가의 고통도 예수의 대망을 끊을 수 없었다.(마 26:39)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드디어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으로 비전을 완수하셨다.(요 19:30) 예수께서는 부활 승천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온 천하에 드러내시고 생명사역을 우리에게 위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사역의 대망을 품기를 원하신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 43:19~20)
이사야 43장 20절에 보면 들짐승도 하나님을 존경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광야와 사막에 물과 강을 내어 그들을 다 먹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들짐승들도 하나님을 존경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당연히 하나님을 존경하고 찬송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대망을 바라보며 에누리 없는 순종으로 하나님을 존경하고 찬송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야성이다. 구두수선공이었던 윌리엄 캐리(1761~1834)는 영국 선교사로서 인도 최초로 학위를 주는 대학인 세람푸르대학을 설립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들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위대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들을 기대하는 것이 대망이다. 위대한 일을 기대하면서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 야성이다. 예수께서는 대망을 이루시기 위해 갈릴리 전역은 물론이고 사마리아 땅과 북쪽의 두로와 시돈까지 가셔서 복음을 전하셨다.
사도들도 이를 본받아 자신의 생명조차 아끼지 않고 야성적 사역을 이어갔는데, 특별히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것을 본 적 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주선이 우주로 올라갈 때 초기 몇 분 동안 에너지 대부분을 쏟는다고 한다. 중력만큼이나 무거운 타성에서 벗어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초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날이 아닌 바로 오늘, 바로 이 시간에 대망을 품어야 한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 대망을 품어야 한다. 말씀을 이뤄나가는 과정 속에 뛰어들어 에누리 없이 순종하겠다는 야성도 품어야 한다.
처음에는 불을 뿜듯이 뛰어들지만, 이후 계속 실천해 나갈 때는 뚜벅뚜벅 한 걸음씩 하면 된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아들과 딸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천국의 고귀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고귀한 존재답게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하실 것을 기대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대망과 야성을 품은 생명사역자가 돼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