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장관 후보자들과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논란은 2019년 한국경제의 그늘을 뼈아프게 보여준다. 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가 건물주라는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은 시대에, 고위 공직자들 역시 부동산을 최고의 재테크 수단으로 삼고 있음을 여지없이 드러냈으니 말이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조물주 위에 건물주'를 꿈꾸는 세상,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누가 뭐라 그래" 갑질하며 돈을 써도 쉽사리 제어할 수 없는 세상,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폭주하는 21세기 자본주의에 누가 제동을 걸 수 있을까.
이오갑 KC대 교수의 책 ‘칼뱅, 자본주의의 고삐를 잡다’(한동네)는 그 가능성을 종교개혁자 장 칼뱅(1509~1564)으로부터 찾는다. 그 여정을 칼뱅이 살았던 제네바의 역사와 사회·경제 상황을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어 칼뱅의 각종 저작과 문서들을 통해 신학이 아니라 칼뱅의 경제사상을 분야별로 정리해 보여준다.
칼뱅과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책 후반부에 본격 다뤄진다. 사실 칼뱅은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 살았던, 경제학자도 아닌 신학자였다. 하지만 100년 넘게 많은 학자가 칼뱅의 사상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다. 시발점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에서 칼뱅의 예정론과 종교개혁의 유산이 자본주의 정신으로 발현됐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베버는 칼뱅주의가 경제 분야에 있어 노동에 대한 의무감과 직업에 대한 소명감, 합리적인 이윤 추구 등으로 표출됐고, 이것이 곧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이를 놓고 반박과 재반박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이 교수는 ‘칼뱅과 자본주의 논쟁’의 역사를 110여쪽에 걸쳐 상세히 소개한다. 베버처럼 칼뱅을 ‘자본주의 정신의 아버지’로 보는 시각부터 칼뱅의 공동체 정신에서 사회주의의 단서를 찾는 시각까지 다양한 논의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이를 살펴본 뒤 칼뱅 신학에 베버 식의 자본주의 정신은 없었다고 결론 내린다. 대신 칼뱅의 경제사상과 실천의 내용을 통해 자본주의와의 관련성을 논증한다. 자본주의적 칼뱅과 사회주의적 칼뱅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이 대립과 긴장을 이루며 균형을 갖춰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칼뱅이 부자들의 탐욕, 사용자들의 횡포와 임금착취 등에 강한 분노를 표출했을 뿐 아니라 1559년 제네바의 인쇄 직인조합 쟁의 당시 조정에 나서 노·사·정 대타협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냈다는 대목이 흥미롭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는 이웃사랑에 기반한 칼뱅의 경제사상과 실천에서 21세기 자본주의의 고삐를 잡는 데 적용 가능한 단서를 찾자고 말한다. “칼뱅은 경제를 근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형제애가 넘치는 공동체를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공동체는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돕고 지원함으로써 존경을 받고, 가난한 자들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고 생활할 수 있게 됨으로써 평화와 일치가 이뤄지는 사회였다. 그는 그런 사회가 제네바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믿었고, 그를 위해 제네바 경제에 참여해서 그것이 보다 인간적이고 형제애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게 했다.”(574쪽) 칼뱅은 이런 생각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 약자들, 망명자들과 부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칼뱅이 제네바에서 했던 일은 오늘날의 교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며 교회를 향한 당부를 잊지 않는다. 특히 칼뱅이 당시의 경제문제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천에 나섰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현대 교회들이 현실 경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칼뱅이 그랬듯이 “경제를 통해 인류의 평화와 일치를 바라는 신의 뜻이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경제를 비롯한 사회 여러 문제에 대해 신중하고 용의주도하게 연구하고 발언하고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칼뱅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이라는 얘기다.
600쪽에 달하는 이 책은 평생 칼뱅을 연구해온 저자가 한국연구재단 인문학 저술지원을 받아 2015년부터 3년간 집필한 노작이다. 저자가 1990년대 박사학위과정을 위해 머물렀던 프랑스 몽펠리에를 찾아가 신학대, 문과대, 법경대 도서관을 드나들며 학제 간 연구를 더했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의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어렵지 않게 논지를 따라가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돋보인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