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이란 학문이 있다. 장애를 개인의 결함으로 보지 않고 장애를 규정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요인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지난 30여년 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장애인 권리운동과 함께 발전해 왔다.
대구대는 지난해 국내 대학 중 최초로 일반대학원에 장애학과를 개설했다. 특수교육·사회복지·재활과학 분야에 대한 역사와 전통이 깊은 대구대가 장애와 관련된 새로운 학문 분야로 그 영역을 넓힌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인운동이 역동적으로 성장하면서 장애학 담론도 조금씩 소개됐다. 하지만 대구대에 장애학과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장애학 연구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대학이나 학과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구대 장애학과는 ‘장애를 만들어내는 사회’(disabling society)의 실체를 규명한다는 교육목표 아래 기존의 재활학, 장애인복지학, 특수교육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학문·학제 간 연구와 교육을 추구하고 있다. 장애인의 삶의 질 개선에서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더불어 사는 통합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개설과 함께 21명이 입학했고 올해엔 12명의 신입생이 합류해 모두 33명이 공부하고 있다. 장애학생이 21명이고 비장애학생이 12명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부터 50대까지 연령대가 폭넓다. 수업은 매주 토요일에 진행된다. 학생들 가운데 직장인이 상당수인데다 광주나 서울, 경기도 파주 등 멀리서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장애학개론부터 장애인 정책과 법률, 장애학과 교육, 장애와 문화·예술,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지원 등의 과목을 수강한다. 8개 과목을 이수하고 논문을 제출하면 장애학석사(Master of Disability Studies) 학위를 받게 된다.
이 학과는 2017년 9월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그해 11월에는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생존학연구센터와 MOU를 체결했다. 한국의 장애학을 선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3학기 재학생 양영희(53·여·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씨는 18년 동안 자립생활운동을 하다 대구대에서 장애학 입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달 30일 수업을 앞두고 만난 양씨는 “현장의 장애인들이 장애학의 관점을 공부해 이를 장애인운동 현장에서 녹여낼 수 있으면 좋겠다”며 “장애학 공부는 인생에 있어 제2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University of Iowa)에서 마케팅을 전공했다는 3학기 재학생 신재인(28·여)씨는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공부하면서 장애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장애학을 다른 분야와 어떻게 접목시켜 발전시킬 수 있을지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3학기차 학생대표를 맡고 있는 김도연(39)씨는 매주 토요일 오전 6시 광주에서 출발해 대구까지 장거리 통학을 하고 있다. 김씨는 학부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뒤 장애인 인권운동 활동가로 일하기 위해 이 학과를 택했다. 그는 “우리 학과에서 100명의 졸업생이 배출되면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정책의 흐름이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홍일 장애학과장은 “장애·나이·지역·거리의 장벽을 초월해 전국에서 모여든 다양한 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연구하고 있는 우리 학과가 진정한 통합사회의 모델”이라며 “향후 박사과정까지 신설해 대구대 장애학과를 한국 장애학을 선도적으로 발전시키는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 장애학 분야 선진국서 유학한 실력파 교수진… 한국 장애학 선도
국내 최초의 대학원 장애학과를 이끌고 있는 대구대 교수들은 모두 장애학 분야 선진국에서 공부한 실력파들이다. 지체장애인인 학과장 손홍일(영어영문) 교수는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의 ‘보통이 아닌 몸:미국 문화에서 장애는 어떻게 재현되었는가’를 번역했다. 이 책은 장애학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으로 널리 알려진 서적이다.
약사 출신의 지체장애인인 조한진(사회복지) 교수는 학과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학을 공부한 학자다. 2006년 국내 최초로 ‘장애학 특강’을 개설해 강의했고 2009년에는 국내 장애학 연구학자들을 모아 ‘한국장애학연구회’를 설립했다. 2013년 한국 학자들이 최초로 출간한 ‘한국에서 장애학 하기’(학지사)의 편집자이자 공동저자로 참여했고 2015년에는 ‘한국장애학회’를 설립해 1·2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장애학 분야 연구자이자 실천가로 활동 중이다.
조성재(직업재활) 교수는 미국 미시건주립대학에서 장애인 재활과 장애학 분야를 전공하고 장애인 고용과 장애의 심리사회적 측면 관련 연구를 이어가며 장애인 인권신장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조 교수는 시작장애인이다.
김건희(유아특수교육) 교수는 미국 시라큐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애학생, 교사, 부모들의 경험에 근거한 연구를 통해 장애와 장애학생을 이해하고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인해 간과될 수 있는 장애학생의 능력의 발견, 적절한 교육환경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다.
이동석(사회복지)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한 후 성공회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0년대 초반 장애의 다양한 패러다임을 한국에 소개했다. 이번 학기에 임용됐으며 약사 출신의 지체장애인이다. 아내 조문순씨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글·사진 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