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 “조물주 위에 건물주”란 말이 나온 지 오래다. 부동산 급상승이 반복되면서 임대업자는 손 하나 까딱 않고 목돈 버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최근 재개발구역 건물을 산 청와대 대변인이나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으로 자녀 유학 자금을 댄 장관 후보자에게 국민들이 느낀 감정은 좌절감이었다. 일하지 않고 돈을 버는 불로소득자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불로소득 자본주의(The Corruption of Capitalism)’는 세계 각국의 경제 체제가 어떻게 유산자들에게 점점 더 큰 이익을 안겨주면서 노동자들의 소득은 더 빈약하게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출현과 그 안에 내재된 부패를 세세하게 조명하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소수가 이익을 독점하는 현 체제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저자 가이 스탠딩이 말하는 불로소득자(Rentier)는 유무형의 자산을 통해 수입을 얻는 사람이다. 불로소득이란 토지·건물·금융 투자에 따르는 전통적인 불로소득뿐만 아니라 지적재산권 수입, 정부보조금 혜택, 서비스 중개에서 오는 소득을 모두 포함한다. 이 소득은 노동 소득에 의존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부자들의 소득 격차를 어마하게 벌리는 역할을 한다.
수정주의 경제학자 존 케인스는 “불로소득자는 자본주의가 완성되면 사라질 것”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1960~90년대 전 세계에서 금융수입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이 시기 불로소득자 몫이 가장 크게 증가한 나라는 프랑스, 영국, 한국, 미국, 독일 순이었다. 2010년 전 세계 부자 388명이 소유한 부가 하위 50% 인구의 부와 비슷했는데, 2015년엔 전 세계 부호 단 62명이 소유한 부와 맞먹었다.
저자는 불로소득 자본주의에 기여하는 것으로 독점적 특허권과 상표권 등 지적재산권을 가장 먼저 지목한다. 구글은 2011년 모토롤라를 125억 달러에 인수해 3년 뒤 29억 달러에 팔았다. 겉보기엔 실패한 거래처럼 보이지만 구글은 결과적으로 승자였다. 구글은 모토롤라 인수로 2만건이 넘는 특허권을 보유하게 됐다. 이 특허권으로 올리는 불로소득은 상품이나 서비스로 올리는 수입과 비슷하거나 더 많다고 한다. 나이키, 코카콜라, 애플, 스타벅스 등과 같은 브랜드는 신생업체의 진입을 막으면서 전 세계 시장에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저자는 자동차와 주택 공유 서비스 업체인 우버나 에어비앤비도 곱게 보지 않는다. 노동과 서비스 중개로 이윤을 가로채는 플랫폼에 불과하다고 본다. 우버는 세계 곳곳에서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한 뒤 시장 지배 후에는 가격을 올리는 방식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저자는 막대한 규모의 국가보조금도 불로소득으로 흘러간다고 폭로한다. 각국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경기 부양이라는 명목으로 기업에 다양한 국가보조금이나 공적자금을 지원한다. 임대업자 세금 혜택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국가보조금을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더 살찌운다. 한국의 경우 20대 대기업들이 지난 5년간 받은 산업용 전기료 혜택이 무려 76조원이었다.
불로소득 자본주의 체제가 점점 강해지는 주된 이유는 유력한 불로소득자들이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노동소득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공기업과 공유지 등의 민영화를 저지하고 공공서비스를 늘리는 것을 지지해야 한다. 불로소득을 없애고 새로운 소득분배체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비정규직·파견직 등 불안정 고용상태의 노동계급 ‘프레카리아트’의 투쟁도 예견한다.
이 책은 돈이 또 다른 돈을 벌어들이면서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생생하게 추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브랜드와 기술이 지배하는 현 시장 체제에서 지적재산권과 같은 불로소득을 없애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 또 마르크스의 주장을 연상시키는 노동자의 투쟁이 지나치게 선언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행동가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설립자이자 공동대표로 기본소득 도입과 숙의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글을 쓰고 있다. 1999년부터 2006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사회경제보장 프로그램 책임자로 일했다. 197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런던대 소아스 국제개발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