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비(非)수도권·광역시’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문턱이 낮아진다. 예타는 사회간접자본(SOC) 등 대규모 재정 투입이 필요한 사업의 적합성을 따지는 절차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부터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다른 기준을 적용키로 했다. 비수도권의 사업은 경제성이 부족해도 지역 균형발전과 삶의 질(質)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예타를 통과할 수 있다. 두 배로 벌어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성장 격차를 좁히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주관적 평가 항목이 늘어난 점, 민간 전문가위원회에서 종합평가를 한다는 점은 우려를 낳는다. ‘선심성 사업’ ‘퍼주기 사업’을 걸러내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는 3일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고 1999년 도입된 예타를 전면 개편한다고 밝혔다. 예타는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고 지원 300억원 이상인 SOC 사업과 중기 지출 규모가 500억원 이상인 복지 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정부는 예타 대상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이원화하고 평가 기준을 달리했다. 앞으로 비수도권은 경제성 가중치를 5% 포인트 낮추는 대신 지역균형 가중치를 5% 포인트 높인다. 경제성이 다소 낮아도 지역균형에 필요한 사업이면 예타를 통과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수도권의 경우 지역균형 항목이 사라지고 경제성 가중치는 올라간다. 경제성이 높아야 예타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예타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본 배경에는 지역 불균형이 있다. ‘SOC 낙후→사람·기업 유출→지역 몰락’ 고리를 끊어보겠다는 의지다. 2017년 비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은 2.4%로 수도권(4.0%)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에 세부기준도 조정했다. 정책성 항목의 경우 주관적 기준이 신설됐다. 현재는 직접적 고용효과만 점검하는데 앞으로는 간접적인 고용효과도 점수에 반영된다. 생활 여건, 환경성, 안전성이라는 평가 기준도 새로 만들어졌다. 정부는 새로운 기준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수치로 계량화하고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기준들이라는 데 있다. 예타를 하는 과정에서 ‘정무적 판단’ ‘정치적 의도’ 등이 끼어들 여지가 커진 것이다.
여기에다 예타 평가기관의 신뢰성도 논란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조세재정연구원은 경제성만 평가하고 종합평가는 기획재정부 안에 만드는 재정사업평가위원회가 맡는다. 재정사업평가위의 각 분과위원회에는 민간위원 2인, 조사기관 관계자 1인, 외부 전문가 7인이 참여한다. 이런 구조를 구축했기에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지만 민간위원들이 다양한 경로로 들어오는 ‘입김’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역 균형발전은 좋지만 정책적 효과, 지역균형 등 비계량화된 항목에 큰 비중을 두고 경제성이 없는 곳에 혈세를 투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지역경제 활성화는 SOC 투입이 아닌 산업구조 개편 정책 등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