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방위비 압박에 러 위협 가중… 칠순 맞은 나토 초라한 잔칫상

입력 2019-04-03 19:1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독일이 방위비 지출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내 아버지도 독일 출생”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부친 프레드 트럼프는 1905년 뉴욕 브롱크스 출생이다. 1869년 바이에른 왕국에서 태어난 할아버지와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AP뉴시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4일로 창설 70주년을 맞는다. 나토는 냉전 기간은 물론 구소련 붕괴 이후에도 유럽 안보의 핵심 축으로 기능해 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센 방위비 분담 압박과 함께 회원국 간 이해관계도 복잡해지면서 나토는 초라한 칠순상을 받게 됐다. 나토는 도를 더해가는 러시아의 패권적 행태와 유럽을 향한 중국의 ‘매력 공세’에도 속수무책인 처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이하 현지시간)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과의 백악관 회담에서 “우리는 일부 (나토) 동맹국들이 공평한 몫(fair share)을 부담하게끔 함께 노력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취임하기 전에 나토 지출 액수는 줄곧 떨어져 왔다”며 “하지만 내가 대통령이 되자 액수는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우리는 이 추세가 계속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은 3~4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창립 70주년 기념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이다. 나토는 창설 60주년인 2009년과 50주년인 1999년 정상회의를 성대하게 열었지만 70주년인 올해에는 이례적으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주재 외교장관급 회의로 축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나토 동맹국들을 맹비난해 축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라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전했다.

나토는 2차 세계대전 종전 4년 후인 1949년 창설됐다. 종전 이후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갈등 구도가 뚜렷해지자 미국과 캐나다, 서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한 게 시초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나토는 1999년 코소보 공습 등 한동안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나토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위기를 맞았다. 안보를 상거래 관점으로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나토는 미국의 부를 빼앗아가는 ‘밑 빠진 독’에 불과하다. 미국은 유럽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돈을 쓰고 있는데 정작 서유럽 부국들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가 쓸모없게 됐다(obsolete)”고도 비난했다.


유럽 국가들에도 책임이 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에도 나토 회원국이 방위비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여러 차례 압박해 왔다. 이에 나토는 2014년 모든 회원국이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올리는 방안에 합의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는 등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데 따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2% 룰’을 충족한 회원국은 지난해 기준 29개 회원국 중 7개국에 불과하다.

미국은 중국, 러시아와 밀착하려는 일부 나토 회원국에도 불만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과 러시아 간 천연가스관 사업을 두고 “독일이 러시아의 포로가 될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미국은 터키가 러시아제 S-400 방공미사일을 구입하자 F-35 스텔스 전투기 수출을 취소하는 초강수를 뒀다.

유럽 국가들은 중국의 사이버 위협 대응을 명분으로 한 미국의 ‘반(反)화웨이 전선’에도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이탈리아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표명하자 “실망스럽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나토 창립 70주년 기념 외교장관회의에서는 사상 처음 중국발 안보 위협도 공식 논의할 예정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