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에는 43개 중앙부처와 17개 시·도 정부혁신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 14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스크린에는 ‘혁신담당자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과 함께 5개의 보기가 등장했다. 참석자들은 검은색 투표 단말기를 손에 쥐고 5개 중 1개 버튼을 눌렀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누른 답은 ‘기관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혁신’(42%)이었고 ‘실적 제출에 대한 부담’(29%), ‘부처 내 소통과 공감대 부족’(14%)이 뒤를 이었다. 이날 현장에서는 “혁신을 담당하는 직원만의 혁신이 아니라 공무원 모두 함께하는 혁신을 하자” “혁신에 실패하더라도 격려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 등 다양한 제안이 이어졌다.
전국 혁신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행정안전부가 정부혁신을 담당하는 현장 공무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개최한 워크숍 때문이었다. 워크숍은 지난 2월 정부혁신 종합추진계획이 마련된 이후 윤종인 행안부 차관이 “현장에서 일하는 혁신담당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제안하면서 만들어졌다. 공직사회에서 아래로부터의 혁신 불씨를 되살려야만 공직 내 혁신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윤 차관은 이날 강의에 앞서 “정부혁신 2년차를 맞이하는데 행정안전부만 정부혁신을 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라며 “각 부처와 자치단체에서 하는 게 정부혁신인 만큼 공감대를 갖고 해야 국민들이 보기에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행정을 혁신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예산을 쏟아 붓거나 인력을 투입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행정 수요는 다양해지고 국민이 공공기관에 거는 기대도 높아졌다. 2017년 기준 OECD 공공데이터 개방지수(1위), 전자정부 순위(1위)처럼 정부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긍정적인 지표가 나오고 있지만 오히려 정부신뢰도는 32위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윤 차관은 “‘정부나 자치단체가 당면한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정부 혁신을 시작하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혁신을 위해 윤 차관은 적극 행정을 통해 정부와 국민 간의 벽을 없애고, 정부 혁신의 주체로 공동체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정부혁신 우수 사례도 소개됐다. 국토면적의 3.96%에 달하는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공단은 인명 구조·수색 뿐 아니라 생태계 변화를 추적 관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면적이 넓고 다양한 지형 특성 상 직접 사람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한계를 겪어왔다. 드론이 공원관리의 맞춤형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2013년 선제적으로 도입했지만 당시 드론은 모두 75대 중 70대가 중국산 제품이었다.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제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은 이후 국내 업체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국립공원 업무 특성에 맞는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작은 소음에도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다 넓은 지역을 비행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 작동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은 드론 박람회를 다니며 상담 부스를 운영했고 국내 13개 업체를 통해 앰뷸런스 드론, 해양 순찰 드론, 고지대 조사 드론 등 특화된 드론 기술 개발을 완료했다. 국내 기업을 육성하고 동시에 공공 분야에 맞는 드론을 조달한 사례다.
이밖에도 시민들의 아이디어로 정책을 실험하는 세종시의 ‘똑똑 세종 실험실’, 민원 처리 기간을 단축한 만큼 마일리지로 적립해 포상을 주는 충남 보령시의 사례도 소개됐다. 워크숍 2일차인 3일에는 ‘데이터가 만드는 행정의 미래’를 주제로 데이터 기반 행정에 대한 전문가 특강도 진행됐다. 데이터 과학에 입각한 정책결정 지원시스템 구축은 정부가 올해 추진하는 정부혁신 역점분야 중 하나다. 기존 경험이나 관행에서 벗어나 객관적 증거와 데이터에 기반해 정책을 수립하는 내용이다.
행안부는 정부혁신 2년차를 맞는 만큼 지난 2월 발표된 정부혁신 종합추진계획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우수 혁신 사례를 공유해 국민 공감대를 확산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연내 우수 사례를 소개하는 ‘정부혁신박람회(가칭)’ 운영도 검토 중이다.
천안=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