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야구 정규리그 초반 다승 부문 순위표 최상단에 다소 낯선 이름이 보인다. 자유계약선수(FA) 양의지(NC 다이노스)의 보상선수로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이형범(25)이다. 불펜으로 활약 중인 그는 3일 현재 3승 1홀드를 달성, 두산의 ‘승리 요정’으로 불리고 있다. 전날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난 이형범은 “순위표를 보다 보면 다승 1위가 진짜 내가 맞나 싶어 얼떨떨하다”고 웃어보였다. 그는 “제가 마운드에서 맞고 내려오면 점수가 나서 승리를 따낸 덕분에 (승리 요정이라는)별명이 붙여진 것 같다”며 “동료 타자들이 점수를 내줘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멋쩍어 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NC 소속이었던 이형범은 1군 통산 39경기에 나와 2승 3패 평균자책점 4.60의 평범한 성적을 남겼다. 그러나 초반이긴 하지만 두산에 온 뒤 달라졌다. 올 시즌 불과 6경기에 나왔는데 벌써 지난 6년치보다 더 많은 승수를 쌓았다. 평균자책점도 2.08로 준수하다. 2일 KT 위즈전에서는 두산 선발투수 유희관에 이어 7회에 등판, 1이닝 무실점으로 필승조 임무를 완수했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을까.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고 한다. 이형범은 “우리 외야수들의 수비 범위가 넓은 편이어서 마음이 편하다”며 “홈구장(잠실)이 커서 투수에게 유리하다는 생각에 공격적 피칭을 하게 된다. 안타가 될 공이 뻗지 못하고 잡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적에 따른 낯설고 서먹한 분위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가 두산 동료들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월 1차 스프링캠프 때. 데뷔 후 첫 이적이었지만 동료·형들의 장난 덕분에 수월하게 팀 적응을 마쳤다. 이형범은 “두산에는 야구 열정이 넘치는 선수들이 많다. 매 경기 안 지려고 하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안정된 상태에서 이형범은 ‘선택과 집중’을 살리는 피칭 기술에 신경을 썼다. 비시즌 새 구종을 추가하기 보다는 자신의 강점인 투심을 극대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특히 릴리스 포인트를 잡으며 공이 휘거나 떨어지는 각도를 일정하게 하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 그는 “지난해 투심이 날리고 뜨는 게 있었는데, 조금 더 낮고 정확하게 던지도록 집중력을 키우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자신감이 붙자 예전엔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만 넣으려고 했는데, 지금은 코스를 선별해 상황에 맞춰 던지고 있다고 한다.
불펜 특성상 시즌 중후반 힘이 떨어지는 점을 고려, “체력관리에 더욱 힘쓸 것”이라는 이형범은 마지막까지 당찬 면모를 잃지 않았다. “상대 타자들이 제 투심을 노릴텐데, 자신 있는 공으로 승부를 볼 겁니다. 시즌 내내 꾸준한 성적을 내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