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3일자 국민일보 지면(1, 2면)에 ‘1억 들여 떠난 독(獨) 암치료… 작년 10명은 못 돌아왔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말기 암 환자들이 알선업체를 통해 국내엔 아직 도입 전인 중입자 치료를 받으러 독일에 갔다가 현지에서 치료 도중 사망하는 사례가 다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번 취재를 통해 그간 얘기로만 듣던 해외 원정 암 치료의 민낯을 세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의료 현장을 다니면서 벼랑 끝에 선 중증 암 환자들의 절절한 사연을 많이 접한다. 오죽하면 1억원 넘는 큰돈을 들여 해외로까지 나갈까 싶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재력이 되는 사람들이나 가능하지, 일반 서민이라면 엄두도 못 낼 거라 내심 짐작했다.
그런데 독일행 비행기를 타는 암 환자 중에는 원정 치료비 마련을 위해 재산 일부를 팔고 은행 빚까지 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암 등 중증질환 치료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지금 세상에도 암 걸리면 집안이 거덜난다는 게 옛말이 아니다. 그렇게 해외로 나가서 치료 효과를 보고 건강을 되찾았다면 쓴 돈이 크게 아깝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독일 주재 한국영사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치료가 기대 수준에 못 미치거나 안타깝게도 숨지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으며 그런 경우 대개 환자와 가족들이 뒤늦게 후회한다고 한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중입자 치료 대상이 안 되는 4기나 말기 암 환자라는 게 문제다. 중입자 치료는 암이 특정 부위에 국한돼 있는 초·중기 암이나 일반 방사선 치료에 저항성을 보이는 부류의 암에 일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러 장기로 퍼진 다발성 전이암에는 크게 소용없다.
진행성 암 환자들의 경우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해보고 더 이상 방법이 없으니 가족과 함께 남은 시간을 편히 보내라고 하면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막막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들에게 알선 브로커가 접근해 독일에선 100% 치료 가능하다고 속삭이면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 개별 암 환자에게 맞는 정확한 치료 정보를 제공해 올바른 판단을 돕기보다 그들의 절박한 처지를 이용해 돈벌이에만 매달리는 일부 악덕 브로커들은 사회의 암적 존재다.
개인 판단과 사적 계약에 따라 해외 원정 치료를 떠나는 걸 뭐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면 모든 책임을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떠맡겨 놓는 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다. 정부와 암 관련 전문가 단체가 국외 원정 암 치료 환자 실태 파악과 보호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사 보도 후 이메일과 인터넷 댓글을 통해 많은 독자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그중 몇 가지 짚어볼 게 있다. 한 네티즌이 “도대체 독일에 몇 명이 갔는지, 1000명이 가서 그 가운데 10명이 안 돌아온 건지, 11명 가서 10명이 사망한 건지…. 기자가 기승전결도 모르고 기사 쓰느냐”고 물어왔다. 졸지에 기사 쓰는 방식도 모른다는 면박을 받았는데, 할 말이 있다.
필자도 해외 원정 암 치료 환자 관련 통계를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얻지 못했다. 정부도 관련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았다. 관리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정확한 실태 파악은 국내 인터넷 공간을 통해 영역을 넓히고 있는 알선업체 조사를 통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들은 업체 명칭에 ‘중입자 치료’라는 말을 넣어 마치 의료기관인 것처럼 행세하며 암 환자들을 끌어모은다.
또 하나, 굳이 해외 치료를 고려한다면 사전에 주치의 혹은 방사선종양학 전문의의 얘기를 반드시 들어보는 게 좋다. 알선업체가 추천하는 해당국 암 치료법이 자신의 암 진행 상황에 맞춰 적합한지, 검증된 방법인지 등을 꼼꼼히 물어보고 결정하라는 것이다. 유독 우리나라 암 환자들은 의사 말을 잘 안 듣는 편이다. 대한민국의 암 치료술과 의료진은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아울러 중입자 치료가 하루 빨리 국내에 도입돼 암 환자들에게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게 근본 해결책임은 분명하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