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상추를 산다
야채를 먹어보려고
좀 건강해보려고
슈퍼에서 한봉지 천오백원
회원 가입을 하고 포인트를 적립한다
남들처럼 잘 살아보려고
어떤 이는 화분에 상추를 기른다는데
아 예뻐라 정성으로 물을 주면서
때가 되면 그것을 솎아 먹겠지
상추를 먹으면
단잠에 들 수 있다는데
상추가 피를 맑게 한다는데
나는 건강해질 것인가
상추로 인해
행복해질 것인가
밥을 데운다
냉장고에서 묵은 쌈장을 끄집어낸다
상추가 포장된 비닐을 사정없이 찢는다
찢은 비닐을 쓰레기통에 내동댕이치는 나는
행복해질 것인가
상추는 나를 사랑할 것인가
박소란의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창비) 중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난 시인 박소란은 2009년 등단했다.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로 시대와 약자의 아픔을 개성적으로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번째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에서 그는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모르는 사이’ 중)라고 인사한다. 제33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