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더 걷힌 세금은 아껴 쓰고 기금만 축냈다

입력 2019-04-03 04:03

문재인정부의 지난해 ‘가계부’가 공개됐다. 수입이 예상보다 25조4000억원 더 들어오면서 재정건전성이 개선됐다. ‘흑자 가계부’는 좋은 일이다. 다만 세부항목에 ‘불균형’이 숨어 있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외치는 정부는 세금을 더 많이 거두는데도 지출에 소극적이었다. 보편적 증세 등을 하지 못하면서 재원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정부가 최대한 보수적으로 돈을 쓴 것이다. 이러다보니 기금에 손을 벌리는 일은 잦아졌다. 사회보장성기금 수지(수입-지출)는 3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2일 기획재정부의 ‘2018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세입은 385조원, 세출은 364조5000억원이었다. 세입 가운데 국세수입은 293조6000억원으로 계획보다 25조4000억원 늘었다. 수입이 증가하자 재정건전성은 좋아졌다. 지난해 국가채무(중앙정부+지방정부)는 680조7000억원으로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 목표치(708조2000억원)보다 낮았다.

국가의 총체적 재정건전성을 볼 수 있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31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조1000억원 늘었다.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도 -10조6000억원으로 1년 새 적자폭을 7조9000억원 줄였다.

그런데 ‘흑자 가계부’가 마냥 반가운 일이 아니다. 최근 경기 둔화 흐름이 뚜렷하자 정부가 지출을 늘려 성장률 제고, 사회안전망 확충에 기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도 ‘확장적 재정정책’을 강조한다. 하지만 지난해 계획보다 세금을 더 걷었다는 건 확장적 재정정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민간의 돈’을 정부가 흡수했다고 볼 수도 있다. 경기 대응과 사회안전망에 쓸 수 있는 돈을 아낀 셈이다.

‘기금 불균형’도 문제다. 사회보장성기금(국민연금, 사학연금, 산재보상보험 및 예방기금, 고용보험)의 수지는 지난해 감소세로 전환했다. 흑자폭이 42조5000억원에서 41조7000억원으로 줄었다. 마이너스 전환은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사회보장성기금수지가 나빠진 데는 고용보험 영향이 컸다. 정부는 고용보험의 기금을 청년내일채움공제, 육아휴직 급여 등 각종 일자리와 모성보호정책 확대에 활용하고 있다. 고용시장 악화에 따른 실업급여 증가도 고용보험기금의 몫이다. 고용보험기금에서 나가는 구직급여, 모성보호육아지원, 전직실업자 등 능력개발지원 재원은 1년 새 20% 안팎으로 증가했다.

문재인정부의 ‘기금 꺼내 쓰기’는 출범 직후부터 예고됐다. 공약 대비 2배 이상 규모가 커진 ‘기금 활용방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하는데, 수입 기반 확대(보편적 증세)를 피해야 하는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보수적 지출’ ‘기금 꺼내 쓰기’ 등을 편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지출 확대 정책을 하려면 재원 충당 방안을 내놓는 것이 기본”이라며 “정부가 증세와 보험료율 인상 등 정공법을 피하고 있는데, 이 같은 버티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