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軍 사칭 페북 접근… 한국인 상대 수십억 ‘꿀꺽’

입력 2019-04-02 19:40
경찰이 미군 등을 사칭한 아프리카인 범죄조직에서 압수한 미화 100달러 지폐 뭉치와 명품. 서울경찰청 제공

울산에 사는 A씨(54·여)는 지난해 6월 한 외국인 남성으로부터 페이스북 친구요청을 받았다. 말쑥한 외모에 군복을 입고 있는 사진에 호기심을 느껴 수락했다. 남성은 자신을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이라 소개했다. 파병 지역에서 근무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그의 SNS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온라인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친분이 깊어졌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됐다.

두 달 후 남성은 “미 정부로부터 포상금 100만 달러를 받게 됐다”며 본국으로 송금하기 위해 필요한 수수료로 1만 달러를 자신의 친구계좌로 보내줄 수 있는지 물었다. A씨는 의심 없이 돈을 보냈다. 이후 남성은 자취를 감췄다.

미군 등을 사칭해 한국인들에게 돈을 갈취한 아프리카인 범죄조직이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나이지리아 등에 본부를 두고 사기 행각을 벌인 국제사기조직 ‘스캠 네트워크’의 조직원 나이지리아인 B씨(40) 등 7명을 검거했다고 2일 밝혔다.

이들은 SNS로 친분을 쌓은 뒤 돈을 가로채는 수법을 썼다. 가상의 SNS 계정을 만든 뒤 무작위로 메시지를 보내고 자신을 이라크나 시리아 등지에 파병된 미군이라 소개했다. 상대와 친분이 쌓이면 “거액의 포상금을 받았다”며 “한국에서 당신과 살기 위해 돈을 보낼 테니 통관비를 지불해 달라”는 식으로 피해자들에게 돈을 송금하도록 유도했다.

피의자들은 국내 은행에 계좌를 만들고 피해자들이 돈을 보내면 바로 인출해 아프리카로 송금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한국인 피해자 23명에게 이들이 가로챈 돈은 2017년 8월부터 1년간 14억원에 달한다. 경찰은 드러나지 않은 피해 액수가 1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부 조직원은 가로챈 돈으로 한국에서 호화생활을 누렸다. 라이베리아인 C씨(32)는 서울 이태원의 한 호텔에 장기투숙하며 지난해 3월 한강의 유람선을 빌려 아프리카인 친구들과 ‘선상 파티’를 열기도 했다.

범죄 행각은 피해자들의 신고가 이어지며 발각됐다. 검거된 7명의 조직원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관계자는 “주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중·장년층이 피해를 입었다”며 “온라인상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접근하는 외국인은 일단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