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산 철강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내린 유럽연합(EU)에 ‘양허정지’(축소하거나 없앤 관세를 다시 부과)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국산 철강에 추가되는 관세 부담액만큼 돌려주겠다는 선전포고다. 그런데 실제 보복조치가 이뤄지기까지 2~3년 걸리기 때문에 당장 거둘 수 있는 효과는 미미하다.
왜 정부는 ‘보복조치’라는 포석을 뒀을까. 이번 조치는 장기적으로 협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포석’이다. 향후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해지면서 EU가 추가로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강경하게 대응할 근거가 된다. EU에 ‘한국도 보호무역주의에 적극 대응한다’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일 “EU의 철강 세이프가드에 대한 양허정지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로 수입하는 EU산 제품에 6400만 달러(5681만 유로) 규모로 양허정지를 할 수 있다고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한국산 철강에 추가로 부과되는 관세액만큼 EU로부터 수입되는 물품에 관세를 매길 수 있다는 뜻이다. EU는 올해 2월부터 2021년 6월까지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 철강에 세이프가드를 시행했다. 한국은 EU 측에 적절한 보상을 요구했었지만, 합의가 불발됐다.
수입 급증으로 국내 산업에 큰 피해가 발생한다고 판단하면 취할 수 있는 게 세이프가드다. WTO 협정에서는 세이프가드를 비정상적 조치로 본다. 대상국은 세이프가드 발동국에 보상을 요구하거나 일정 요건에 따라 보복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한국의 양허정지 통보는 WTO 협정에 따른 통상적 절차인 셈이다.
다만 이면에는 무역 불확실성에 대비한다는 목적이 깔려 있다. 협정 절차에 따라 양허정지 권한을 미리 확보해놔야만 EU가 세이프가드를 추가 발동하더라도 적법하게 대응할 수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EU는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고율 관세 부과로 미국으로 향하던 철강 물량이 EU에 집중되는 걸 막기 위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보호무역주의가 더 강해지면 세이프가드를 추가 발동할 수 있다. 만약을 대비해 대응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허정지 권한을 가진 것만으로도 세이프가드를 완화하거나 철회토록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양허정지는 ‘세이프가드 발효 3년 이후’ 또는 ‘WTO가 세이프가드 발동이 협정을 어긴 것이라고 판정한 뒤 가장 빠른 시점’부터 실행할 수 있다. WTO의 판정이 보통 2~3년 걸리기 때문에 한국의 보복조치는 일러도 2021년에나 가능하다. 정부는 양허정지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시점이 왔을 때 국내외 상황을 종합 고려할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협정에 따른 대응전략을 짜는 동시에 수출 및 통상 현황을 수시로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