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文대통령 “보수·진보 대신 실용”… 정책·인사로 실천하길

입력 2019-04-03 04:01
문재인 대통령이 시민단체 사람들과 간담회를 했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을 망라한 70여개 단체에서 참석했다. 쓴소리가 쏟아졌다. 가시 돋친 말은 정권에 우호적인 단체와 비판적인 단체를 가리지 않고 나왔다. 진보 쪽에선 개혁이 기대에 못 미친다며 불만을 토해냈고, 보수 쪽에선 이 자리에 나서는 것조차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는 얘기를 했다. 청년세대 대표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었다. 정권을 끌어가는 이들은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지금의 국정은 지지파, 중도파, 반대파 중 어느 쪽도 만족스러운 점수를 줄 수 없는 상태임이 확인됐다. 촛불에 힘입어 밀어붙이던 동력이 이제 소진됐음을 겸허하게 인정하라. 민심은 우리 편일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

간담회에서 귀를 잡아끄는 발언은 문 대통령이 했다. “다름을 인정해야 통합이 가능하다”는 보수단체 인사의 말에 “이제 보수나 진보 같은 이념은 필요가 없는 시대다. 국가 발전을 위해 실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극우파를 가리켜 ‘보수꼴통’이라 부르는 말이 일상화되자 보수진영에선 ‘진보꼰대’란 말을 만들어냈다.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 진보의 지향이 무엇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만 하는 천박한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았고, 이 정권 들어 더욱 견고해졌다. 유튜브를 보수진영이 애용하자 진보 쪽에서 탈환전에 나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북한과의 대화는 국가의 명운이 달린 일인데 한쪽에선 진보의 불장난처럼 폄하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모두 편 가르기에서 비롯된 문제다. 국론의 분열을 넘어 위기로 치닫는 상황에 누군가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할 시점인데, 마침 대통령이 ‘실용’을 말했다. 국정 운영자의 입에서, 그것도 보수의 시대를 마감한 진보진영의 아이콘에게서 이 말이 나온 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어떻게 해야 국민의 삶이 나아질지만 생각하자’는 말로 들렸다. 그런 말이었기를 바라는 국민이 많았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반목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적폐이자, 정권이 검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청산할 수 있는 적폐다. 대통령이 이를 겨냥한 말을 처음 꺼냈다. 실용은 그 뜻처럼 실천으로 이어져야 값어치가 있다. 이념이나 진영 따위는 내던져버린 정책과 인사가 실행돼야 한다. 간담회는 이 정권이 간단찮은 위기에 직면했음을 보여줬다. 타개하는 최선의 방법 역시 대통령이 말한 실용을 실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