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났던 노라가 돌아왔다. 페미니즘 서사의 원형 격인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을 모티브로 한 ‘인형의 집, Part 2’(연출 김민정)가 오는 10일부터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1879년 초연된 원작은 사회가 규정한 성역할과 편견 속에 인형처럼 지내던 노라가 자아를 찾기 위해 가족을 떠나 집을 나서며 막을 내린다. 미국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는 여기에 질문을 덧댔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극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난 노라가 1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며 시작된다. 가족이 그리워서가 아닌 남편 토르발트와 이혼 절차를 밟기 위해서다. 그녀는 자신이 남겨두고 떠났던 남편과 딸, 그리고 유모와 차례차례 마주하며 치열한 설전을 벌인다. 201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토니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수작으로,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른 연극으로 선정됐다.
출연진이 탄탄하다. 노라 역은 서이숙 우미화, 토르발트 역은 손종학 박호산이 맡았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자주 얼굴을 비추지만, 모두 연극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다.
최근 LG아트센터에서 만난 배우들은 배경이 19세기 후반임에도 현재와 긴밀히 맞닿아 있는 연극이라고 입을 모았다. 손종학은 “100년이 넘은 지금도 공연이 되는 건 공감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라며 “가부장적인 토르발트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결혼이란 소재를 통해 서로가 어우러지는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연극”이라고 소개했다. 서이숙은 “답을 얼마간 찾았다고 여기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노라는 가족들과 근본적인 문제로 다시 부딪친다. 이 작품은 우리가 이런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했다.
한 여성이 아닌 사회 속 개인의 삶을 깊게 조명하는 연극으로 봐도 무방하다. 설득력 있는 논리로 무장한 토르발트, 유모 앤 마리(전국향), 딸 에미(이경미)와 노라가 벌이는 언쟁은 사회 속 관점의 충돌을 보여주는 동시에 올바른 삶에 대해 다층적으로 고민하게 한다. 박호산은 “대사에 함의가 많아 보물 지도를 보는 느낌이다. ‘남자는’ ‘여자는’으로 시작하는 대사들을 가급적 줄이고 있다. 가정에서 사회 얘기로, 또 자아에 관한 얘기로 확장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미화는 “노라는 ‘어떤 한 사람’의 표상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되뇌게 한다”고 설명했다.
배우들의 내공만으로 끌어가는 연극이다. 등장인물 4명 중 2명이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세트도 소박하게 구성됐다. 유려한 대화 흐름과 논쟁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다. 그만큼 ‘말맛’이 넘친다.
“진지할 땐 매우 진지하다가 또 한편으론 ‘순풍산부인과’처럼 위트가 있습니다. 다이내믹하죠.”(박호산) “직설적인 화법에서 나오는 유머와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우미화) “오롯이 언어만으로 배우 대 배우가 부딪치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서이숙) “평소에 대사로 말장난을 칠 정도죠. 배우의 힘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손종학) 공연은 28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