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장바구니 가져올게요. 집이 가까워서.”
1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A슈퍼마켓을 찾은 30대 여성은 ‘일회용 비닐봉투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는 안내문을 보더니 구입한 물건을 계산대에 두고 집으로 향했다. 매장크기 165㎡(약 49.9평)가 넘는 이 슈퍼는 환경부가 정한 일회용 비닐봉투 전면금지 대상이다. 다시 가게로 돌아온 여성의 손에는 에코백 2개가 들려 있었다. 그는 가방 가득 물건을 담고 미처 들어가지 않은 음료수를 팔에 안은 채 매장을 나섰다.
마포구의 또 다른 B슈퍼마켓 역시 계산대와 벽 곳곳에 ‘재사용 종량제 봉투, 장바구니, 종이봉투 등을 일회용 비닐봉투 대체품으로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안내 문구를 써붙였다. 한 남성 손님이 20ℓ 종량제 봉투를 구입하고도 물건이 다 담기지 않아 난감한 표정을 짓자 계산원은 “비닐은 못 드린다”며 작은 종이 상자를 꺼냈다. 서울 영등포구의 C슈퍼마켓은 일회용 비닐봉투 금지를 안내하며 ‘속비닐 사용도 1장으로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이날부터 대형마트, 백화점, 대형 슈퍼마켓 등에서 비닐봉투 사용이 본격 금지됐다. 위반시에는 과태료 300만원이 부과된다. 국민일보의 취재 결과 동네 대형마트에서도 일회용 봉투 금지는 어느 정도 자리잡은 분위기였다. 미처 장바구니를 챙기지 않은 손님들은 “종량제 봉투만 가능하다”는 안내에 별다른 불만 없이 봉투를 구입했다. 작은 품목은 손에 그대로 들고 가는 사람도 많았다. 이날 환경단체인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서울의 매장크기 165㎡ 이상 슈퍼마켓 62곳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1곳을 제외한 61개 매장(98.4%)에서 일회용 비닐봉투를 판매하지 않았다.
계산대 직원들은 계도 기간 손님과의 마찰이 잦았다고 토로했다. A슈퍼마켓 직원 박모(56)씨는 “어르신들에게 속비닐을 많이 가져가시면 안 된다고 안내하면 ‘그거 하나에 얼마한다고 그러냐’고 하셔서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는 “비닐을 못 준다고 하면 기분이 상해 계산대에 물건을 한가득 올려놓고 가버리는 손님도 있었다”고 전했다.
어패류나 정육 등 물기가 샐 수 있는 제품에만 허용된 속비닐 사용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B슈퍼마켓 직원 남모(43)씨는 “냉동제품뿐 아니라 냉장제품도 물기가 맺히기는 마찬가지”라며 “단순 온도차이로 수분이 생기는 경우는 속비닐이 안 된다고 하는데, 현장에선 기준이 혼란스럽다”고 했다.
일부 가게는 배달 서비스에 문제가 생겼다. 영등포구의 D슈퍼마켓은 배달 시 물건을 담는 대형비닐을 3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직원 이모(47)씨는 “생분해성 비닐이 아직 들어오지 않아 기존 비닐을 제공하되 돈을 받기로 했다”며 “오토바이로 배달하다보니 박스보단 여러 형태로 나눠 담을 수 있는 비닐이 편리하다”고 설명했다.
배선영 녹색연합 전환사회팀 활동가는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여전히 많지만 굉장히 의미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이미 포장돼 나오는 공산품에도 촘촘한 세부 규정을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소비자가 직접 용기를 가져가서 구매할 수 있는 법·제도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상은 박세원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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