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1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을 단독으로 시작했다. 9·19 군사합의에는 이날부터 남북 공동 유해 발굴을 진행한다고 돼 있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불이행한 첫 번째 사례다.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내부 결속을 다지며 새 전략 구상에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재천 국방부 부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향후 북한이 호응해올 경우 즉각 남북 공동 발굴로 전환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남측 유해발굴단 구성을 완료했다’는 지난 3월 6일 우리 군 당국의 통보에 답하지 않았다. 이에 남측은 군사분계선(MDL) 이남 지역에서 지뢰 제거와 기초 발굴 작업을 진행키로 한 것이다.
남측 단독으로 시작된 유해 발굴 작업에는 100여명이 투입됐다. 남측 단독 유해 발굴은 늦게라도 북측이 호응할 경우에 대비한 준비 작업인 동시에 북측에 ‘9·19 군사합의를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측면도 있다. 군 관계자는 “이번 작업은 발굴 가능성이 높은 곳에 표시를 해놓은 뒤 주변 흙을 제거하는 준비 작업 위주로 실시할 것”이라며 “북측과 협의한 뒤 본격적인 발굴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 민간 선박이 1일부터 한강 하구에서 자유항행을 할 수 있도록 하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군 당국은 당초 이날로 예정됐던 남측 민간 선박의 한강 하구 시범 항행을 경기도 김포시 전류리 포구부터 한강 하구 입구까지 남측 지역에서만 진행하도록 했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자는 지난 3월 18일 우리 측 제안에도 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군사회담을 조속히 열어 지난해 9·19 군사합의 이행 상황과 올해 추진 계획을 점검하려고 했다. 앞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월 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3월 중 남북 군사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지만 불발된 것이다. 군사회담이 장기간 열리지 않을 경우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는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렵고, 경제 협력 같은 다른 남북 관계 개선 사업 역시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의 의도는 안갯속이다. 북한은 남북 교류 사업에 거리를 둔 채 연일 자력갱생 기조를 주민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일자 사설에서 “자력갱생의 길은 인민의 자주적 존엄과 삶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며 “자기 운명을 남에게 의탁하고 남의 힘을 빌려 부흥과 발전을 이룩하려는 것은 자멸행위와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세 의존은 망국의 길이며, 자력갱생만이 인민의 모든 꿈을 현실로 꽃피울 수 있는 진로”라고도 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충격을 받은 이후 새로운 전략 노선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비핵화 협상 방식이나 남북 관계 개선 속도 등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해 ‘새로운 길’로 갈 수 있음을 암시해 왔다”며 “북·미 협상이 교착된 상태를 풀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택 최승욱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