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시작되는 나루히토(德仁·59) 새 일왕의 연호(年號)가 ‘레이와(令和)’로 결정됐다. 레이와는 일본 최고(最古) 시가집인 ‘만요슈(万葉集)’의 매화 관련 구절에서 따왔다. 일본에서 연호제가 도입된 이후 중국 고전이 아닌 일본 고전에서 인용한 것은 처음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1일 기자회견에서 “만요슈는 일본의 풍부한 국민 문화와 오랜 전통을 상징하는 국서(國書)”라면서 “봄의 도래를 알리며 화사하게 핀 매화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내일의 희망과 함께 각각의 꽃을 크게 피운다는 소원을 담아 연호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연호가 시작되는 원년(元年)을 기준으로 삼는 햇수를 서기(西紀)와 함께 공문서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일본 정부는 31일까지 일본문학, 한문학, 일본사, 동양사 등의 전문가로부터 추천받은 새 연호 후보를 6개로 추렸다. 이날 오전 사회 각계 대표 9명으로 이뤄진 연호위원회와 국회 중·참의원 의장단 의견을 청취한 뒤 임시각의에서 새 연호를 최종 결정했다. 이어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장방관이 새 연호를 발표했다.
일본에서 ‘원호(元號)’로 불리는 연호는 서기 645년 중국에서 도입됐다. 근대 개혁을 이룬 제122대 메이지(明治) 일왕 때부터 ‘1대(代)의 연호를 하나로 한다’는 원칙이 정착됐다. 1979년 원호법이 제정되면서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부터 정부가 결정하게 됐다. 원래 새 연호는 일왕 즉위와 함께 발표되는 게 맞지만 일본 정부는 “갑작스러운 연호 변경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새 일왕 즉위 한 달 전 발표를 결정했다.
‘레이와’의 첫 글자인 ‘레이(令)’는 일본 연호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와(和)’는 쇼와(昭和) 등 총 19번 사용됐다. 연호 선정 전문가 그룹에 아베 총리 뜻을 반영해 국사학자와 국문학자가 참여하면서 새 연호가 일본 고전에서 선택될 것이라는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와(和)가 일본 요리를 의미하는 ‘와쇼쿠(和食)’처럼 일본 자체를 뜻하는 말이어서 아베 총리가 천황제를 바탕으로 일본 중심의 국수주의를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 연호가 발표된 이날 일본 열도는 하루 종일 떠들썩했다. NHK를 비롯한 주요 방송사들은 특별 생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했으며, 요미우리·아사히·마이니치 등 주요 신문들은 호외를 발행했다.
특히 오전 11시40분쯤 스가 관방장관이 ‘레이와’를 처음 공개할 때 도쿄 신주쿠, 오사카 도톤보리 등 주요 번화가에서 대형 TV 스크린으로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로부터 박수와 함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새 연호 발표 이후 2시간 동안 트위터에서 ‘레이와’ 관련 트윗은 450만건에 달했다. JR오사카역 등에선 일부 시민들이 새 연호 발표 소식을 게재한 신문 호외 쟁탈전을 벌이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새 연호 공개와 함께 일본 기업과 관공서들은 일제히 바빠지기 시작했다. IT시대에 연호가 바뀌는 것이 처음인 만큼 기관마다 데이터 변경 작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달력과 도장 업체들은 연호 변경에 따른 특수를 누리게 됐지만 은행, 철도, 기업들은 사고 발생에 대비한 보완 작업에 들어갔다. 연호가 바뀌면서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식을 못하거나 오류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