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엔진이 식어간다. 지난달 수출액이 줄면서 4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지나치게 반도체에 의존하는 ‘치명적 구조’가 결정타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에서 20%가량(금액 기준)을 차지한다. 시장에서는 ‘어두운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반기에도 반도체 가격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중국의 성장 둔화 등 부정적 대외 환경도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출 엔진의 온도가 쭉 식어갈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 진단은 이와 다르다. 정부는 ‘수출 물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 수출 물량이 견고하기 때문에 단가 상승기에 접어들면 수출 실적도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글로벌 경기도 상승세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때문에 반도체 가격 회복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기댄 안일한 ‘수출 긍정론’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수출액(통관 기준)이 471억12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2% 감소했다고 1일 밝혔다. 지난해 12월(-1.7%)부터 올해 1월(-6.2%), 2월(-11.4%)에 이어 넉 달째 내리막이다. 수출액이 4개월 연속 하락하기는 2016년 7월 이후 처음이다. 무역수지는 52억2000만 달러로 86개월 흑자를 보였지만 지난해 3월(64억1200만 달러)과 비교해 흑자 폭이 크게 쪼그라들었다.
산업부는 원인으로 ‘중국의 성장 둔화’ ‘반도체 등 주요 수출 품목의 단가 하락’을 지목했다. 박태성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수요 부진과 이에 따른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반도체 수출액이 16.6% 줄었다”며 “중국의 경기 둔화로 대중 수출도 15.5%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도체를 제외하면 지난달 수출액은 5.9% 줄어드는 데 그친다. 반도체 등 주요 품목의 수출 물량이 비교적 양호한 기조를 보이고 있어 올해 하반기 반도체 단가가 오르면서 수출 실적도 회복할 것”이라며 긍정적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시장에선 수출이 악화일로 흐름을 보일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1일 보고서를 내고 “올해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교역 증가율이 작아질 것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의 성장 둔화, 글로벌 반도체 시장 위축 등이 하방 압력으로 지속 작용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반도체 단가는 하반기에도 여전히 ‘바닥’에 머무를 것이라는 비관론에 무게가 실린다. ‘상저하고’라는 정부 예측과 다른 것이다. 시장조사 기관 D램익스체인지는 “올해 3분기 PC·서버용 D램 가격이 10%가량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분기 가격 하락 예상폭도 기존 최대 15%에서 20%로 수정하며 반도체 단가 하락세가 오히려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산업연구원이 반도체 업종의 전문가 2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하반기 반도체 수출액이 각각 16.9%, 6.1%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