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살해에 연루됐던 용의자 2명이 모두 풀려나게 됐다. 지난달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27)가 전격 석방된 데 이어 베트남 여성 도안티흐엉(31)도 1일 살인이 아닌 상해 혐의를 적용받아 이르면 5월 초쯤 풀려날 예정이다. 이로써 김정남 살해 사건에서 살인 혐의로 재판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됐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법원은 이날 무기를 사용해 의도적으로 상해를 입힌 혐의를 적용, 흐엉에게 징역 3년4개월을 선고했다. 흐엉은 살인 혐의로 지금까지 재판을 받아왔지만 검찰 측이 이날 혐의를 상해로 변경하면서 형량이 대폭 낮아졌다. 말레이시아에서 살인 혐의가 확정되면 예외 없이 사형 선고를 받는 반면 상해는 최고 형량이 징역 10년이다.
흐엉은 재판에서 통역사를 통해 혐의 변경 사실을 듣고 즉각 유죄를 인정했다. 흐엉은 법정을 나서며 기자들에게 “행복하다. 공정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흐엉이 2017년 2월 구속된 만큼 출소일은 2020년 6월이지만 감형이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말레이시아 관례상 실제 출소는 5월 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흐엉은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시티와 함께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북한인 남성 5명도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이 중 4명이 사건 당일 북한으로 도주했고 나머지 1명도 증거 불충분으로 추방 조치만 받았다. 두 사람은 최근까지 말레이시아 법원에서 재판을 받다가 지난달 11일 검찰의 갑작스러운 공소 취소로 시티가 먼저 석방되면서 흐엉만 남겨지게 됐다. 흐엉이 VX를 손에 묻혀 직접 김정남의 얼굴에 바른 인물이라는 점에서 살인 혐의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한때 나왔었다.
흐엉의 혐의 변경은 베트남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스칸다르 아흐메드 검사는 법정에서 “베트남 정부와 변호인 측의 호소를 받아들여 혐의를 감경해달라는 법무장관의 제안이 있었다”고 밝혔다. 판결 당시 방청석에 앉아 있던 베트남 정부 관리들이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레꾸이꾸인 말레이시아 주재 베트남대사는 “흐엉이 조속히 석방될 것이라는 데 대해 큰 감사를 표한다”면서 “흐엉 역시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의 피해자였음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