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이 1987년 11월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을 그해 대선에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정황이 외교문서를 통해 재확인됐다. 외교부는 31일 KAL기 폭파사건, 88서울올림픽 등과 관련한 25만여쪽 분량의 ‘30년 경과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87년 12월 10일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체포돼 있던 바레인에 특사로 파견된 박수길 외교부 차관보는 본부로 보낸 전문에서 “바레인 당국에선 (김현희의 한국) 인도가 성급하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다고 한다”며 “마유미(김현희가 사용한 가명)가 늦더라도 15일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12일까지는 인도 통고를 주재국으로부터 받아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해 대선이 12월 16일 치러진 점을 감안하면 전두환정부는 김현희를 대선 전에 압송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박 차관보는 “마유미 인도가 선거 이후가 되도록 미국이 바레인 측에 작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도 보고했다. 김현희 압송은 한 차례 연기 끝에 15일에 완료됐다.
97년 탈북한 고(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당 서기 겸 국제부장이던 88년 9월 방북한 유럽의회 사회당 대표사절단에게 “KAL기 사건은 생명보험금을 타기 위한 남한의 조작이었다”고 말한 사실도 당시 주벨기에 한국대사의 보고를 통해 드러났다.
88서울올림픽 관련 비화도 공개됐다. 중국은 당시 자국 선수단을 판문점을 경유해 육로로 서울에 보낼 계획이었으나 북한의 거부로 무산됐다. 주파키스탄 한국대사 대리는 88년 8월 외교부에 보낸 전문에서 “중국이 철도편으로 판문점을 경유해 선수단을 서울로 보내려 했으나 북측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보고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사회주의 국가들의 서울올림픽 참가 명분을 만들기 위해 남북 분산 개최 아이디어를 활용한 정황도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84년 우리 정부 인사들에게 “사회주의 국가들이 LA대회(84년) 보이콧 이후 서울에 오고 싶어하는데 단 한 가지 장애물이 북한이라 분산 개최를 제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