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운동·일왕 사진에 절 거부해 옥고… 한국전 중 평양서 순교

입력 2019-04-01 00:01
기현두 새온교회 목사가 지난 27일 서울 노원구 교회 목양실의 순교자 기념 포스터 앞에서 부친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한다. 마음속 신앙과 머릿속 지식 역시 빼앗지 못한다.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택한 목회자 후손이 전하는 메시지다.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서울 노원구 상계3단지. 15~17평 임대아파트 옆에 자리한 새온교회에서 지난 27일 기현두(70) 목사를 만났다. 기 목사는 1970년대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빈민운동을 하다 87년 상계동 이주민들과 함께 교회를 개척했다. 새문안교회가 당시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새온교회 개척을 도왔다. 그에게 부친 기주복(1897~1950) 목사에 관해 물었다.

기현두 목사의 부친 기주복 목사.

“아버지는 주일에 태어난 복덩이란 뜻으로 이름을 ‘주복(主福)’이라 지었다고 해요. 할아버지는 황해도 수안군 두대동교회 기형달 영수였고요. 영수는 지금의 안수집사를 말해요. 3·1운동 당시 평양 숭실전문학교 졸업반이던 아버지가 고향 수안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구두 밑창에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숨겨 돌아왔지만 거사 직전 일경에 발각됐다고 합니다. 이 일로 할아버지가 대신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요. 아버지는 만주로 도피했다가 귀국해 숭실학교 교사가 되지만 만세운동 주모자였던 게 드러나 2년간 평양감옥에 수감됐지요.”

아버지 기 목사는 32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황해도 북부에서 목회를 한다. 일제 말기엔 일왕 사진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주감옥에 2년간 수감된다. 해방 후 곡산읍교회에서 시무하다가 김일성정권의 주일선거에 반대하고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가입을 거부해 공산당 청년당원들에게 테러를 당했다. 50년 6·25전쟁 직전 정치보위부의 사전 예비검속으로 구속돼 전쟁 중 평양에서 순교했다.

아들 기 목사는 “일제 시절엔 일경과 싸우는 것이어서 고초를 겪어도 괜찮았는데, 해방 후엔 동포 청년들과 대립하게 돼 괴롭다고 아버지가 어머니께 토로하셨다”고 전했다. 기 목사는 50년 12월 피란 당시 갓 돌을 넘긴 아기여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대부분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들었다. 아들은 등에 업고 어린 두 딸은 손을 잡고 피란길에 나선 어머니는 황해도 예성강 수렁에 빠지는 등 죽을 고비를 넘기다 이고 있던 짐을 하나둘 잃어버리고 남편의 평양신학교 졸업사진 한 장만 간직할 수 있었다.

기 목사는 “그때 남편을 잃고 짐도 잃어버린 채 고향을 떠난 경험으로 어머니는 ‘마음속 신앙과 머릿속 지식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점을 후손들에게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모친은 생애 마지막인 93세 때까지 매일 오전 5시 아들 기 목사가 이끄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해 예배를 드리다 99년 소천했다.

경기도 용인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의 비석에는 기주복 목사의 이름 아래 마태복음 10장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는 말씀이 새겨져 있다. 3·1운동, 신사참배 거부, 좌우 대결과 6·25전쟁 등을 겪어낸 한국교회 순교자의 신앙이 집약된 구절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