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항소심·사법농단 의혹 증인들 불출석, 골치 아픈 법원

입력 2019-03-31 18:52

법원이 ‘증인’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항소심에서 핵심 증인들의 잇따른 불출석으로 재판이 공전을 거듭하자 재판부는 구인장을 발부하며 증인 소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 재판도 증인 신문이 예정된 현직 법관들이 줄줄이 일정 연기를 요청하면서 차질을 빚고 있다.

31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 29일 이 전 대통령 재판은 또 한 차례 공전했다. 다스 실소유주 관련 핵심 증인인 김성우 전 다스 사장과 권승호 전 다스 전무가 법정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3일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소환에 응하지 않자 재판부는 구인장을 발부했다. 기일은 오는 5일로 재지정했다. 두문불출하던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은 재판부가 구인장을 발부하겠다고 밝히자 지난 28일 법정에 출석했다.

사법농단 의혹 재판도 증인 신문 일정으로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 증인은 210여명에 달한다. 이 중 100여명이 현직 법관이다. 재판부는 지난 28일 시진국 통영지원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시 부장판사가 재판 업무를 이유로 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오는 17일로 미뤄졌다. 거의 3주나 일정이 늦춰진 셈이다. 오는 4일 증인 신문이 예정된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도 재판 준비로 불출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증인으로 소환되면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할 수 없다. 계속 불출석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구인장을 발부할 수 있다. 임 전 차장 재판에서 검찰은 “현직 법관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해 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과 동일한 기준으로 사유를 판단해 출석을 독려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과태료와 구인장이라는 수단이 있기는 하지만 끝내 증인이 나오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이 경우 통상 증인 신청을 철회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국정농단 뇌물 재판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구인장 발부에도 응하지 않아 결국 신청을 철회했다. 형사재판을 맡아온 한 부장판사는 “구인장을 발부하더라도 직접 물리력을 행사해 끌고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며 “구인장은 일종의 최후통첩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현직 법관들이 출석을 미룬다 해도 과태료를 부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재판 업무 특성상 사건 당사자 등 여러 명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며 “증인 출석을 이유로 재판 일정을 변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했다. 재판 업무로 인한 불출석은 정당한 사유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