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퇴진은 깐깐해진 새 외부감사법 적용에 따른 ‘회계대란’이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지난 2014년 워크아웃 졸업 후 유동성 리스크에 상시 노출됐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삼일회계법인의 ‘한정’ 감사의견에 급박하게 재감사를 받았지만 시장 신뢰 상실과 차가운 여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상장법인 중 전날까지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을 공시한 상장사는 총 60개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배 넘게 급증한 배경에는 개정된 외부감사법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은 통상 자료 미비 또는 회계법인과 사측 간 이견 때문에 발생한다. 감사보고서가 첨부된 사업보고서를 제출시한인 다음달 1일까지 제출하지 못하면 관리종목 지정에 따라 거래가 정지될 수 있고 지연이 계속될 경우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한다.
신(新) 외감법은 감사인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고, 위반 및 오류에 대해 징계가 가능하며 감사 결과에 대한 ‘크로스 체크’도 요구된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이같은 회계감사 기준이 ‘FM(원리원칙)’대로 적용되면서 삼일회계법인과 의견차를 제때 조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은 26일 “재감사를 통해 감사의견을 ‘적정’으로 정정한다”고 공시했다. 새 재무제표에는 감사법인이 지적했던 운용리스 항공기의 정비의무 충당부채, 마일리지 이연수익(미실현돼 부채로 인식해야 하는 수익) 인식·측정 등이 반영됐다. 이에 따라 부채가 800억원 넘게 늘어났고 이는 고스란히 재무제표상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악화된 경영 실적이 재확인되면서 시장의 신뢰도 추락했다. 회계 기준 강화로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30억원 급감한 459억원에 그쳤다. 당초 잠정실적에 비해 영업이익은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순손실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당기순이익조차 125억원 적자로 나타나면서 부채비율 역시 치솟을 가능성이 높아져 그간의 유동성 위기 해소 노력이 무색해질 위기에 처했다.
2017년 말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심층관리대상’으로 분류해 실사를 진행해 온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경영 부실을 타개하고 그룹을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협상을 통해 산은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비핵심자산 매각, 전환사채 및 영구채 발행 등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지난해 ‘기내식 대란’으로 그룹 안팎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이 끊임없이 부각돼왔고, 이번 회계감사 ‘한정’ 사태가 결정타로 작용했다. 박 회장은 이날 임직원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고객의 신뢰와 재무적 안정을 위한 여러분의 협력도 과제로 남기게 돼 안타깝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제 불찰이고 책임”이라고 말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