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가 1019억원… 최고 몸값 현존 작가 작품세계에 ‘첨벙’

입력 2019-03-31 20:03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진행 중인 ‘데이비드 호크니’전에서 관람객이 호크니의 작품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를 보고 있다. 전시는 호크니의 아시아 최초 회고전이라는 입소문이 나며 개관 8일 만인 지난 30일 현재 누적 관람객 수 2만4000여명을 기록했다. 뉴시스

양탄자가 깔려 있는 작업실에 스웨터 차림으로 서있는 노인은 다름 아닌 데이비드 호크니(82)이다.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언뜻 회화로 보인다. 그러나 엄청난 크기여서 가상의 공간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이 작품은 자신의 스튜디오를 360도 각도에서 스캔하듯이 찍은 사진 3000장을 골라 합성한 것이다. 평생 그린 대표작들이 벽에 걸려 있고, 좌대 위에는 스모 선수처럼 크다고 해서 ‘스모북’이란 애칭이 붙은 호크니 작품집도 펼쳐져 있다. 그래서 스튜디오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 같은 호크니가 이렇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음, 대가란 말이에요, 끊임없이 실험을 멈추지 않는 거예요. 나이가 들어서도 말이죠.”

영국 팝아트의 거장 호크니가 한국에 왔다. 맞다, 그 작가. 제일 작품 값이 비싼 생존 작가, ‘첨벙!’ 물살이 튀는 수영장 시리즈로 유명한 그 작가다. 서울 중구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이 영국 런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과 손잡고 역대급 전시를 기획했다. 회화와 드로잉, 판화 등 133점이 왔다.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으로, 테이트 미술관이 소장한 호크니 작품 중 1점을 빼곤 몽땅 왔다. 더욱이 노년의 대작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는 한국에서 첫 공개되는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수영장 시리즈 중 ‘예술가의 초상’(1972년 작·1019억원)으로 생존 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체류하던 시절 그렸던 수영장 시리즈. 수영장은 런던의 우중충한 날씨와는 다른 환한 미국 햇살의 아이콘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1967년 작)도 물론 왔다. ‘첨벙!’은 그림 속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도 시원하게 튀는 물살만으로 물속으로 사라진 누군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다. 한 번의 붓질로 쓱 그은 듯한 물살이지만 실제로는 세필로 몇 주에 걸쳐 그렸다. 영국 왕립예술학교 시절 혜성처럼 등장했던 호크니는 미술사를 새로 쓴 입체파 화가 피카소의 전시를 본 뒤 이렇게 결심했다. “피카소처럼 유행에 따르지 않고 나만의 스타일을 추구해야겠어.” 빛났던 청춘인 30세에 그린 이 그림은 당시 뉴욕 화단을 지배한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이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기였던 것이다.

수영장 시리즈에서 화면을 평면적으로 그렸다면, 호크니는 30대 후반 들어서는 자연주의를 추구했다. 오랜 관찰을 통해 미세한 빛과 그림자까지 반영하며 인물을 살아있는 것처럼 그리고자 했다. 이 시기를 지배했던 주제는 주변 커플을 담는 ‘2인 초상화’였다. 등신대의 ‘클라크 부부와 퍼시’를 보라. 두 부부가 거실로 들어서는 우리를 응시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1973년 피카소의 사망은 호크니의 작품 세계를 또 한 번의 변신으로 이끈다. 사진을 동반자처럼 활용했던 작가는 이젠 사진이란 ‘외눈박이 순간 포착’에 불과하다며 입체파의 다시점을 연구한다. 그랜드캐니언을 사진으로 찍은 뒤 60개의 패널에 이어 붙여 장쾌한 파노라마처럼 만든 ‘더 큰 그랜드캐니언’(1998년 작)은 사진과 다시점의 결합이다. 길이 7m의 이 거대한 풍경화는 결국 60개의 다른 시점으로 그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의 50~60대 시절인 1980~90년대는 왕성하게 실험을 했던 시기였다. 무대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추상화를 시도하고, 다시 판화를 찍기도 하고, 포토 콜라주 작업도 했다. 이 모든 실험이 향하는 질문은 한 가지였다. 3차원의 현실을 어떻게 하면 2차원의 평면에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테이트 브리튼 측 협력 큐레이터 헬렌 리틀은 “그는 지금도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8월 4일까지. 입장료 성인 1만5000원.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