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제1회 서울모터쇼를 구경 온 한 소년이 있었다. 자동차를 좋아했던 소년은 그날의 설렘을 잊지 못해 입장권을 어른이 될 때까지 간직했다. 그 설렘은 자동차 디자이너의 꿈으로 이어졌고, 그는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의 주요 모델을 직접 손으로 그리게 됐다. 그리고 24년 후, 자신이 만든 자동차를 서울모터쇼 무대에서 직접 발표하는 날이 왔다.
‘2019 서울모터쇼’가 시작된 2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독일 BMW 본사의 임승모(38) 디자이너를 만났다. 임씨는 ‘M5(F90)’ 등 BMW 고성능 브랜드 M시리즈 제품도 디자인했지만 BMW 자동차의 미래를 보여주는 콘셉트카의 외장 디자인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11년 공개한 ‘비전 커넥티드 드라이브’, 2016년 BMW그룹 100주년 기념 콘셉트카 ‘BMW 비전 넥스트 100’에 이어 이번 모터쇼에서 공개한 ‘i 비전 다이내믹스’ 콘셉트카의 디자인을 맡았다. 세계적인 명차 브랜드의 미래가 한국인 디자이너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부 시절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임씨는 자동차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독일 포르츠하임 대학원에 진학했고, BMW에서 인턴 기간을 보낸 뒤 지난 2010년 입사했다. BMW를 선택한 것은 자신의 디자인 취향이 BMW와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임씨는 “나와 BMW의 시너지는 콘셉트카에서 지속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면서 “개인적으로 좋은 디자인이란 조화롭고 비례감이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을 바탕으로 디테일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동시에 예상치 못했던 특징이 얹어지게 되면 더 좋다”고 덧붙였다.
임씨는 이미 국내 대학 시절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군복무 시절이던 2005년 전국 대학생 자동차 디자인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다. 임씨는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꾼다면 본인의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우선순위를 정해 부족한 것들을 채워나가는 것을 고민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임씨는 영화와 음악, 책 등에서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그는 “공상과학 애니메이션에서 인공근육이 적용된 골격 수트를 본 적이 있다”며 “100주년 기념 콘셉트카를 디자인할 때 그 이미지가 떠올라 ‘얼라이브 지오메트리’라는 움직이는 펜더로 탄생했다”고 말했다.
BMW의 촉망받는 디자이너는 평소에 어떤 차를 탈까. 임씨는 “BMW 1시리즈 ‘E82’ 쿠페 모델의 작지만 볼륨감 있는 디자인을 좋아해 8년째 타고 있다”면서 “하지만 본사가 걸어서도 출퇴근 할 수 있는 거리여서 사실 운전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멋쩍게 웃었다.
고양=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