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해외공관 습격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자신들 소행이라고 밝힌 반북 단체 ‘자유조선’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을 뿌리째 흔들겠다”며 북한의 ‘대안정부’를 자처한 이 단체는 아직 김정은 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만한 존재로 보이지는 않지만 뚜렷한 눈엣가시로 부상했다.
자유조선은 28일 홈페이지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이들은 “북한 내 혁명동지들과 함께 행동으로 김정은 정권을 뿌리째 흔들 것”이라며 “우리는 김씨 일가 세습을 끊어버릴 신념으로 결집된 국내외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북한을 탈출해 세계 각국에 흩어진 동포들과 결집한 탈북민 조직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더 큰 일들이 앞에 있다”면서도 “언론의 온갖 추측성 기사들의 공격으로 행동조의 활동은 일시 중단 상태”라고 밝혔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해외에서 활동하는 탈북자 단체인 자유조선은 북한 내부 세력과도 공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북한 해외공관을 연이어 공략하고 있다는 것은 이 단체 안에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세력이 있다는 얘기”라며 “북한 정보기관에 근무했거나 정보 분야에 몸담았던 사람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말레이시아의 북한대사관 외벽에 ‘김정은 타도 연대 혁명’이라는 스프레이 낙서가 자유조선 로고와 함께 그려지기도 했다. 자유조선은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김 위원장 이복형)의 아들 김한솔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고 주장한 ‘천리마민방위’의 후신이다. 다만 김한솔이 이 단체를 이끌고 있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릴라 단체인 자유조선이 북한 체제를 흔들 만한 영향력은 가지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입장에선 상당히 눈에 거슬리는 존재겠지만 체제 균열을 일으킬 만한 규모는 아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자유조선이 ‘온라인 비자’ 발급을 통해 후원금을 모으고 있는데, 비자는 국가만이 발급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 단체가 북한의 대안정부를 자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사관 습격과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훼손 등 상당한 실행력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주스페인 북한대사관 습격사건 배후에 미 중앙정보국(CIA)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습격에 참여한 일당 중 최소 2명은 사건 전 CIA 측 인사와 접촉했다고 미국의 북한전문 매체 NK뉴스가 27일(현지시간) 스페인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스페인 측은 CIA가 이들 일당과 접촉했음을 입증하는 증거를 확보하고 미국 측에 확인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다만 스페인 정부는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이 일을 더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스페인 한국대사관이 북한대사관 습격 직전 관련 정보를 인지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습격을 이끈 에이드리언 홍 창이 사건 2주 전 사전답사 목적으로 북한대사관을 방문했는데, 북한 관련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국 외교관들이 이런 이상 징후를 포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홍 창은 35세 멕시코 국적자로 파악됐다. 그는 2010년 테드(TED) 연구원일 당시 제출한 이력서에 자신이 이화여대에서 강의했고 미 예일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고 적었다. 마드리드 체류 때 ‘매튜 차오’라는 가명을 사용한 홍 창은 대사관 침입 당시 이용한 택시 호출 서비스 우버에 ‘오스왈도 트럼프’라는 이름으로 예약했다.
자유조선 대변인격인 리 월로스키 변호사는 미국 CNN방송 등에 보낸 성명에서 “잔혹한 체제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하는 건 매우 무책임한 처사”라며 언론에 자신들의 이름 공개를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최승욱 조성은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