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직 건 메이 배수진 통할까

입력 2019-03-28 19:29 수정 2019-03-28 23:18
사진=AP뉴시스

영국 정치권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놓고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하원은 27일(현지시간) 브렉시트 옵션 8개에 대한 의원들의 의향투표(indicative vote)를 했지만 어느 안도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테리사 메이(사진) 총리가 정부와 EU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승인하면 사임하겠다고 배수진을 쳤지만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하원은 EU의 양보로 3월 29일에서 4월 12일로 미뤄진 브렉시트 시한을 공식 승인한 뒤 의원들이 제출한 브렉시트 옵션들에 대한 의향투표를 벌였다. 제출된 15개 안건 가운데 존 버커우 하원의장이 8개를 선택해 표결에 부쳤지만 어느 것도 과반(320표)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8개 옵션 가운데 EU 관세동맹 잔류 옵션이 찬성 264표 대 반대 272표로 8개 대안 중 가장 적은 8표차로 부결됐다. 하지만 과반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찬성 268표 대 295표로 부결된 2차 국민투표 옵션이 표차는 더 크지만 과반 달성에 가장 가까웠다. 가디언은 “8개 옵션 가운데 관세동맹 잔류와 제2 국민투표에 대한 지지가 앞서 2차 승인투표에서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받은 찬성표(242표)를 웃돈다”고 지적했다.

의향투표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의회의 여론을 공식 확인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무시하기 어렵다. 그동안 메이 총리의 합의안을 두 차례 부결시켰던 하원은 이날 격론을 벌였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의회는 4월 1일 브렉시트 토론을 다시 벌이기로 했다. 그 전까지 메이 총리의 합의안에 대한 3차 승인투표가 열려 통과된다면 의향투표는 필요없게 된다.

하원의 의향투표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자 메이 총리가 나섰다. 메이 총리는 집권 보수당 내 강경파 모임 ‘1922 위원회’를 찾아가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사임하고, 이르면 29일 의회 표결에 다시 붙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가디언은 “메이 총리가 반란군을 길들이기 위해 마지막 카드를 썼다”고 비꼬았다.

한 시민이 2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의회의사당 부근에 설치된 전광판 앞에서 유럽연합(EU) 깃발과 영국 국기를 흔들고 있다. 전광판에는 “투표하게 해 달라”고 적혀 있다. 이날 영국 하원은 브렉시트 방식과 관련한 8개 옵션을 표결에 부쳤으나 모두 부결됐다. AP뉴시스

하지만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 3차 승인투표가 하원에서 통과될지는 불투명하다. 당장 29일 하원 표결 상정 여부도 불확실하다. 버커우 하원의장은 앞선 두 차례 승인투표에 상정됐던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 않으면 투표 개최를 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메이 총리는 이에 대해 브렉시트 날짜가 변경됐고, 논란의 북아일랜드 ‘백스톱(안전장치)’ 조항에 대해 EU의 추가 확약을 문서로 받아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즉 이번 합의안은 앞서 부결됐던 합의안과 다른 내용이라는 것이다.

메이 총리의 주장이 용인돼 하원에서 3차 승인투표가 진행돼도 과반수 지지를 얻을지 불확실하다. 보수당의 연정 파트너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이 메이 총리의 사임 의사에도 불구하고 합의안을 지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냈기 때문이다. 다만 메이 총리의 사임 배수진에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등 보수당 강경파의 일부는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