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1530조원은 과연 관리가 가능한 숫자일까. 빚이 불어나는 속도는 더뎌졌다지만 벌어들이는 돈의 증가율보다는 여전히 빠르다. 모두가 불황을 말하는 가운데 취약차주,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은 더 나빠지고 있다. 부동산시장이 위축 국면이라 집주인들의 재무상황 변화를 점검해야 한다는 경고마저 나왔다.
한국은행은 28일 올해 첫 금융안정회의를 열고 지난해 말 현재 가계부채가 1534조631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17년 말보다 5.8% 증가한 것인데, 한은은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지난해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2013년(5.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다만 같은 기간 소득 증가율이 가계부채 증가율에 못 미친다는 게 문제다. 소득보다 빚이 빨리 늘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 말 159.8%에서 지난해 말 162.7%로 높아졌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역시 같은 기간 83.8%에서 86.1%로 상승했다.
86.1%는 꽤 의미가 있는 숫자다. 국제결제은행(BIS)은 ‘부채의 실질효과’라는 보고서에서 “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성장을 저해한다”며 “가계부채는 GDP의 85% 수준이 임계점”이라고 진단했었다. 이날 한은도 “한국 가계부채가 주요국보다 이미 높은 수준”이라며 “지속적인 대응 노력이 필요하다”고 총평했다.
공개된 가계부채의 면면에선 경제력이 약한 곳의 사정이 더욱 나빠진 현실을 엿볼 수 있다. 빚을 감당하기 어려운 이들이 더 많은 빚을 지고, 그나마 은행권이 아닌 비은행권으로 쏠렸다. 전체 가계부채에서 고소득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지만 저소득층 비중은 높아졌다. 차주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LTI)을 보면 부채 부담이 비교적 적은 LTI 100% 미만 차주는 줄었고, LTI 300% 이상 차주 비중은 늘었다.
특히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하위 30%) 또는 저신용(7~10등급)인 ‘취약차주’의 부채 규모는 2015년 이후 계속 증가세다. 147만명으로 집계되는 이들 취약차주가 빌린 돈은 지난해 말 86조8000억원에 이르렀다. 여기엔 새희망홀씨 등 정책적으로 공급된 서민금융이 일부 들어 있긴 하다. 하지만 한은 관계자는 “서민금융이 (취약차주 가계부채 증가의) 주요한 원인은 아니며, 소득 여건이 악화하면서 대출이 전반적으로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약차주의 64.8%는 은행이 아닌 상호금융권, 대부업체, 저축은행 등에서 돈을 빌리고 있다. 별다른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 비중도 취약차주가 비취약차주의 2배에 가까웠다. 그리고 비은행권의 대출은 지난해 연체율이 소폭 상승했다. 이에 한은은 “영세자영업자 및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채무상환 능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빚은 가계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꾸준히 늘며 적신호를 보낸다.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01.2%로 조사됐다. BIS가 말하는 성장 저해 임계점은 90%다. 한은은 기업부채 비율의 상승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보다는 낮다면서도 “대내외 여건 악화로 기업들의 매출액 증가율이 둔화하는 모습”이라고 우려했다.
한은에 따르면 2013년 이후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은행보다는 비은행을 통해 많은 기업부채를 형성하고 있다.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완만히 나아지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개선 정도는 제한적이었다. 재무건전성 취약 업종으로는 조선, 음식·숙박, 운수, 부동산이 꼽혔다. 한은은 “자동차, 기계 등 실적이 양호했던 업종도 최근 일부 악화했다”며 “중장기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