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한승태] 슬픔을 공책에 적지 않는 이들을 위해

입력 2019-03-29 04:03

무자비한 방식으로 부를 거머쥔 사업가가 있다. 그에게 갑자기 뇌종양 선고가 내려진다. 그는 과거를 곱씹어보기도 전, 한 달 만에 사망한다. 그런데 신이 그를 다시 살려낸다. 그는 어느 재벌가의 고3 아들이 되어 정신을 차린다. 그는 전생의 잘못을 하나하나 수정해가며 완벽에 가까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사회 최고위층만이 들어갈 수 있는 비밀 조직에 발을 들인 젊은이도 있다. 그것도 잠시, 그는 우두머리의 미움을 사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 역시 다시 태어난다. 그는 대학 졸업반 시절의 자신으로 되돌아와 있다. 그는 전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답지를 펼쳐놓고 시험을 보듯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간다. 9급 공무원 시험에 네 번 떨어진 서른 살의 남자도 있다. 그가 또 한 번의 불합격을 확인하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로 죽는다. 이번엔 저승의 실수로 9살 소년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심리를 연구해보고 싶은 사회학자가 있다면 웹 소설의 세계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위의 이야기들은 내가 요즘 즐겨 읽는 웹 소설들의 줄거리다. 여러분도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을 눈치 채셨을 것 같다. 극단적인 문제 상황에 처해 있던 주인공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그러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되살아난다. 그는 이전의 실패와 실수를 피해가며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이러한 설정의 소설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를 형성했다. 이미 (종이책으로 출간한다면) 도서관의 한국 문학 서가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이 발표됐고 지금도 계속 읽히고 있다. 내게 웹 소설이란 영역을 소개해준 친구는 이런 설정의 이야기들이 큰 인기를 누리는 이유를 이렇게 해석했다.

우리가 농담 삼아 던지는 ‘이번 생은 틀렸어’라는 표현에 담긴 좌절감이 판타지 장르를 통해 그 출구를 찾은 것이 아니겠나,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사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현실과 미래를 대하면서 느끼는 절망과 무력감이 너무 압도적이라 잘못 그린 그림을 지워 버리고 새 그림을 그리듯 현재의 삶을 끝내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인물들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이다.

여러 가지 사회 지표도 이런 해석에 무게를 실어주는 듯 보인다. 올해 초, 보건사회연구원에서 펴낸 보고서에서 30세 미만 청년 61.55%가 우리 사회의 계층이동성이 ‘낮다’고 응답했다. 지난 1월 28일 국민일보 기사에는 ‘잘 태어나야 대학도 직장도 잘 간다’는 인식을 증명해주는 여러 수치들이 제시되어 있다. 그중 한 대목을 살펴보면 ‘부모 소득이 200만원 이하인 자녀들은 서울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7~8% 수준인데 500만원 이상인 자녀들은 25~30%가 인(in) 서울을 하고 있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삶이 특정한 한계에 지워져 있었다는 인식, 그리고 노력만으론 절대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없으리라는 자각만큼 인간을 절망하게 만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웹 소설에서 일부러 열패감만을 읽어낼 필요는 없다. 내 묘사가 거칠었는지 모르겠지만 웹 소설에는 주류 문학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역동성이 넘치고 앞서 언급한 작품들도 삶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개성 강한 글로도 유명한 화가 김점선씨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슬퍼하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너무 슬픈 나머지 자살해 버린다. 다른 사람은 슬프다 하고 공책에 쓴다. 그러는 동안 슬픔이 사라진다.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작용이 일어난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람들은 슬픔을 공책에 적지 않는 사람이다. 비슷한 괴로움과 절망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환생해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이야기를 쓰려고도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 하루 종일 때로는 일주일 내내 다른 사람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 나는 어째서 이 모양이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 다음날 아침을 생각하면 이유도 없이 숨이 막혀오는 사람들. 수면제가 없으면 2시간 이상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가 이런 젊은이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출생률이 떨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멀쩡해 보이던 청년층 인구가 뭉텅뭉텅 증발해 버리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한승태(르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