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실에 보건교사가 없다”, 미세먼지 대책에 2부제 단속에 정수기까지

입력 2019-03-28 04:01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으로 교실 공기정화장치 설치를 서두르면서 ‘업무 과중’을 호소하는 보건교사가 늘고 있다. 학교 환경위생관리자로 지정돼 있는 보건교사 1명이 공기청정기는 물론 공기순환설비 관리까지 도맡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일선 보건교사들은 “학생을 돌보고 교육하는 것보다 미세먼지 관련 업무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고 토로한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유치원 및 초·중·고교 교실에 공기정화설비와 미세먼지 측정기를 설치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2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에 따라 각 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공기정화장치 수요조사와 현황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미세먼지 대책’이라는 큰 틀에서 학교에 내려오는 업무는 대부분 학교 환경위생과 보건관리를 담당하는 보건교사에게 돌아간다. 미세먼지 농도 측정, 학부모에게 경보 문자 발송, 야외활동 자제 안내, 미세먼지에 따른 학사일정 조정, 고위험군 학생 관리 등이다. 일부 보건교사는 미세먼지 긴급대응조치가 발령되면 직접 차량 2부제 단속에 나서기도 한다. 2년차 보건교사 A씨는 “‘공기’ ‘미세먼지’라는 말이 들어가면 모두 보건교사가 맡고 있다”며 “차량 2부제를 하면 (다친 학생을) 응급처치하다 외부 차량이 들어오는 걸 막아야 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정부가 교실 공기정화장치 설치를 일괄 추진하면서 혼란은 더 커졌다. 기존에 미세먼지 관련 업무를 했다는 이유로 보건교사가 시설설비 업무까지 도맡는 사례가 생긴 것이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 보건교사 김모(46)씨는 “수요조사 공문이 계속 내려오는데 교실 평수, 설비 현황, 에어컨 모델, 필터 교체주기 등 전혀 모르는 분야라 본래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며 “학교 구성원 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어 교육청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의 또 다른 중학교에 근무하는 B씨도 “현재 보건교사는 정수기 관리, 공기정화장치시설 조사, 미세먼지 등 업무를 보느라 학교 곳곳을 돌아다녀야 할 일이 많아 학생 관리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며 “교원평가에 ‘보건실에 갈 때마다 보건교사가 없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는데 너무 속상하고 교사로서 정체성 혼란과 회의감을 느꼈다”고 했다.

보건교사가 학교에 한 명밖에 없다보니 과도한 업무에 항의하거나 적극적으로 업무 분담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한탄도 나온다. 지난해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임용된 보건교사 C씨는 공기정화장치 설치부터 관리까지 혼자 도맡다가 과중한 업무를 견디지 못하고 병가를 냈고, 1년 만에 학교를 옮겼다. C씨는 “설치만 담당하라는 말에 공사업체 선정 등 세세한 업무까지 혼자 처리했는데 설치가 된 이후에도 각 반에서 ‘공기정화장치에 빨간 불이 들어왔으니 고쳐달라’ 등의 문의가 쏟아졌다”고 전했다.

지역 교육청은 “업무분장은 학교장의 권한”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공기정화장치 업무를 누가 담당할지는 학교에서 판단할 부분”이라며 “교육청에서 업무분장을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대전과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공기순환장치 설치 후 관리는 외부 업체나 기관이 맡기 때문에 보건교사 업무 부담은 크지 않을 거라 판단한다”고 말했다.

박상은 박세원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