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에 헌책 12만여권 갖춘 ‘책의 보물창고’ 열렸다

입력 2019-03-27 20:52
시민들이 27일 서울 송파구 잠실에 문을 연 초대형 헌책방 ‘서울책보고’를 둘러보고 있다. 32개 철제 서가들 사이로 터널처럼 만들어진 통로가 인상적이다. 서울시는 10년 가까이 비어있던 암웨이 물류창고를 리모델링해 국내 최초의 ‘공공 헌책방’으로 탈바꿈시켰다. 김지훈 기자

서울 송파구 지하철 잠실나루역 근처에 1465㎡ 규모의 초대형 헌책방이 문을 열었다. 암웨이가 물류창고로 사용하다 10년 가까이 비워둔 건물을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서울책보고’라는 이름의 헌책방으로 재탄생시켰다.

27일 첫 개방된 서울책보고는 헌책방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세련된 실내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창고 건물이라서 천정이 높고 전면에 유리창을 크게 내 환하다. 서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를 맡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서가다. 철제로 만든 서가 32개가 죽 늘어서 있는데 그 가운데로 마치 터널처럼 통로를 냈다. 통로는 일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하고 높낮이도 달리해 예술적인 공간감을 자아낸다.

서가에는 12만여권의 헌책이 꽂혀 있다. 서울시내 25개 헌책방이 각자 서가를 분양받아 책들을 비치했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지켜온 동아서점, 동신서점을 비롯해 ‘서울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씨책방, 글벗서점, 숨어있는책 등의 이름이 보인다. 헌책 판매대금은 수수료 10%를 제하고 헌책방에게 돌려준다. 위탁 판매공간인 셈이다.

내부에는 서가공간 외에 강연이나 모임을 할 수 있는 아카데미 공간, 전시 공간, 카페 공간이 있다. 전시 공간 벽면에는 ‘독립출판물 코너’가 마련돼 있다. 국내에서 출간되는 독립출판물 2100여권을 열람할 수 있다. 전시 공간에서는 1950년대 교과서, 옛날 잡지, 초판본 등 헌책방과 연계한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아카데미 공간에서는 저자 사인회, 북콘서트, 출판워크숍, 글쓰기강의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예정이다.

물류창고를 헌책방으로 탈바꿈시킨 서울책보고는 서울역 고가를 공중보행로로 만든 ‘서울로7017’, 마포 석유비축기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한 ‘문화비축기지’에 이어 오래된 산업시설을 재생한 또 하나의 사례다.

이날 오전에 열린 개관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비어있는 암웨이 창고를 뭘로 사용해야 할까 고민한 지 7년이 됐다”면서 “책을 좋아하는 시민들에게 이런 공간을 만들어주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서울책보고를 두고 공공이 왜 헌책방 사업을 하느냐는 질문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정수 서울도서관장은 “서울책보고는 단순한 헌책 판매처가 아니라 지역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이자 위기에 처한 헌책방과 독자를 연결해 주는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개관식에는 헌책방 업자들과 출판·도서관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이용훈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은 “공공이 나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시도는 국내에서 처음이고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