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한 형제를 소개 받았다. 나와 같이 교직에 있고 유쾌한 성격의 남자라 모두들 너무 잘 어울린다고 했다. 나도 ‘내 짝이 분명해’ 하며 1년 넘게 양구와 남양주를 피곤한 줄 모르고 넘나들었다. 그런데 이 형제는 교직 6년차임에도 통장은 마이너스였다. 결혼을 어떻게 할거냐고 했더니 결혼식에 들어오는 축의금으로 하면 된단다.
적금으로 결혼준비를 완벽하게 해 놓은 나와 정반대인 경제개념에 어이가 없었지만 교회 공동체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직후 남편의 지갑에서 최소한의 카드만 남겨두고 모두 잘라버렸고 남편도 흔쾌히 응했다. 우리는 알뜰살뜰 돈을 모았다. 그런데 남편은 지나치게 느리고 꼼꼼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몇 십 분이었고 박물관이나 여행을 가면 안내문을 읽느라 내가 구경을 다하고 나올 때 들어간 적도 많다. 이렇게 작은 일에 너무 심취하고 개념이 없는 것이 정말 싫었다.
이런 일 때문에 다투고 나면 적반하장으로 며칠 대화도 없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분을 내도 하루를 넘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나는 남편을 용서하지 못했고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너무 억울했다. 어느 형제가 아내와의 문제는 쌍방과실이라는 간증을 했을 때도 나는 잘못이 7대 3 또는 6대 4 하며 옳고 그름은 분명히 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사님께서 에베소서 5장 말씀을 하실 때 ‘남편을 주께 대하듯 해야 한다’는 말씀도 내 기준이 확고하다보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사이에 남편에 대한 원망은 점점 깊어졌다.
그러다 ‘예수는 역사다’라는 말씀이 선포됐다.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말씀이 그날따라 너무 선명하고 실제적으로 들렸다. 고린도전서 15장에는 부활을 본 사람들의 명단이 쭉 나왔다. 게바, 열두 제자와 500여 형제, 야고보, 맨 나중에 바울도 분명히 본 것이다. 많은 제자들이 부활한 신령한 몸을 진짜로 보았음이 너무 확실했다. ‘아!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졌구나!’ 그 순간 나는 제자들과 같이 부활의 주 앞에 섰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요한복음 16장 9절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선포했다. ‘죄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거라고? 나는 예수님 잘 믿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하나님을 배신한 내게 그 아들 예수를 보내주셔서 용서해 주셨는데도 그런 예수님마저 믿지 않으려 했던 그 악랄한 중심이 선명히 비춰지며 그 자리에서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원인을 남편에게 돌리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내 실상이 그대로 보였다. 남편을 주께 대하듯 하라는 말씀이 나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것 같아 ‘예수님! 그 부분만큼은 제발 제 마음을 알아주세요.’ 하며 예수님 자리에 올라가 있던 괴물 같은 자가 바로 나였다. 나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하나님! 그동안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이제는 주님만을 저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다.
남편을 주께 대하듯 하지 못하고 정죄 판단했던 내 삶은 변하기 시작했다. 남편에 대한 내 잣대를 완전히 내려놓으니 그렇게 싫었던 부분들이 다 장점으로 보였다. 작은 일에 심취해 있는 모습까지 세심하고 합리적인 자상함으로 보였다. 복음은 남편까지 변화시켰다. 학교 직원들을 집으로 불러 식사를 대접하고 복음을 전하는 남편이 너무 귀하게 보였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굴복된 자만이 모든 문제나 인간관계에서 자유롭고 기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정확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남편을 소중히 여기고 돕는 배필로 섬기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이뤄가는 부부로 살아갈 것이다.
박찬은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