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망명 정당인 신한청년당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려 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신한청년당은 여운형 선우혁 장덕수 등 중국 상해에서 활동하던 기독교인이 주축이 돼 결성한 항일독립운동단체다. 독립 의지를 만방에 전하기 위해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했으며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박명수 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은 27일 “신한청년당이 1918년 11월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쓴 독립청원서를 보면 미국이 새로운 국제질서의 중심이란 점과 한국에 민주주의를 도입한 기독교의 역할, 기독교를 억압하려는 일제의 모습이 언급된다”며 “이는 신한청년당이 당시 국제질서를 어떻게 인식했고 어떤 국가관을 추구했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날 경기도 부천 서울신학대 우석기념관에서 열린 ‘제23회 영익기념강좌’에서 ‘신한청년당의 형성과정과 기독교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했다.
여운형이 대표로 명기된 신한청년당의 독립청원서는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새 역사를 시작한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를 이룩한 미국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한반도와 만주 일대를 무단 통치하는 일제의 악정과 이로 인해 정신·정치·경제적 측면에서 고통받는 한국의 상황, 미국이 한국의 독립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 등이 서술된다.
박 교수는 이들 내용 중 정신적 측면에서 고통받는 한국의 상황이 묘사된 부분에 주목했다. 독립청원서 중 ‘선교사가 기독교를 선교한 다음 그 숫자가 50만에 이르고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가 들어와 조선에 있어 정신적 발전에 최대 기관이 된 까닭에 조선의 국교가 예수교라 생각하고 이를 박해하였다’는 내용에 한국에서 기독교의 위치 및 기독교를 바라보는 신한청년당의 시각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제사(同濟社)와 다른 시각으로 기독교를 바라본 것이다. 신한청년단 설립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동제사는 1912년 상해에 설립된 독립운동단체다. 대종교 신도들이 주축을 이뤘으며 중심인물인 신규식은 단군을 섬기는 대종교를 새로운 나라의 국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신한청년당의 독립청원서에는 ‘나라를 잃은 국가는 정신적 지주가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그런 역할을 한다’ ‘기독교는 국교와 같은 위치에 있고 일본은 이런 기독교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는 문장이 나온다”며 “신한청년당이 한민족의 회복을 기독교의 회복에서 찾았음을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신한청년당의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가 된 상해임시정부 설립 과정에도 계승됐다. 박 교수는 “당시 임시정부에 참여한 여운형은 ‘새로 세워지는 정부는 기독교와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정부가 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며 “그즈음 제정된 대한민국임시헌장에 ‘신의 의(意)에 의해서’ ‘신앙의 자유와 소유의 자유’ 등이 언급된 게 그 방증”이라 설명했다.
부천=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