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시가격은 올리면서…, 7484억 팔린 건물 과세 기준은 2801억

입력 2019-03-28 04:05

지난해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사옥의 과세 기준은 2801억원(땅값+건물값)으로 책정됐다. 이 건물은 실제로는 7484억원에 거래됐다. 실거래액(시세) 대비 과세 기준은 37.4%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7132억원에 거래된 서울 종로구 더케이트윈타워의 과세 기준은 1984억원(27.8%)에 불과했다.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은 “대형 빌딩 등의 거래가 흔치 않다는 이유로 과세 기준이 시세와 동떨어지게 책정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재인정부는 ‘부동산 조세형평성 맞추기’를 위해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하고 있다.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 공동주택 공시가격, 표준지 공시지가의 시세 반영률(현실화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사각지대’가 여전히 남아 있다. 시세에 맞지 않는 과세 기준이 책정되고 있는 ‘비주거용 부동산’이 바로 그것이다.

2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상가나 오피스빌딩, 호텔, 공장 같은 비주거용 부동산은 단독주택, 공동주택과 달리 통합적인 공시가격이 매겨지지 않는다. 토지와 건축물을 분리해 가치를 매기는 탓에 과세 기준도 복잡하다. 토지와 건물에 대해 각각 시가표준액을 산정한 후 공정시장가액비율, 세율을 곱해 토지분의 재산세, 건물분의 재산세를 계산한다. 건물이 있는 토지는 국토부의 개별 공시지가를 활용하고, 건물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산정한 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한다. 여기에다 건물에 대한 세금은 다시 국세와 지방세로 나뉜다. 국세청과 지자체가 각각 산정해 종합한다.

부동산 가격에는 교통 등 입지적 요인과 건물 효용성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된다. 정부가 책정한 땅값과 건물값을 단순히 더한 것보다 오피스빌딩의 실거래가격이 훨씬 비싼 이유다. 하지만 비주거용 부동산은 다양한 요소를 반영한 통합 공시가격이 없어 늘 과세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진다.

비주거용 부동산의 시세 반영률은 표준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의 공시가격에 비해 한참 낮다. 한국지방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비주거용 부동산의 시세 반영률 가중평균은 46.9%에 그쳤다. 지난해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51.8%), 공동주택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68.1%)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부산(30.9%) 대구(37.4%) 광주(20.7%) 등 수도권 이외 지역의 시세 반영률이 두드러지게 낮다. 상업용 건물과 오피스텔 현실화율 가중평균도 각각 42.9%, 51.8%로 유형별로 제각각이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부동산세의 공평과세 원칙인 ‘동일 가격, 동일 세부담’이 구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비주거용 부동산 가격공시제도를 도입하려 했다. 2016년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법적 근거까지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 3년이 넘도록 제도 도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통합 공시가격을 매기는 기준이 되는 시세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사고파는 행위가 있어야만 적정한 시세가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과세 기준도 정할 수 있다. 비주거용 부동산은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임의로 시세를 매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비주거용 부동산은 토지 소유자와 건물 소유자가 다른 경우도 많다. 하나의 가격을 공시하면 통합과세가 돼 다시 분리해야만 해 행정비용이 커질 수 있다.

그나마 최정호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비주거용 부동산 가격공시제도 도입에 긍정 입장을 보여 조만간 제도 도입의 첫발은 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적정시세 산출 방법을 마련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최 후보자도 “가격(시세) 산정이 어렵고, 국민 세부담이 커질 수 있어 경제상황과 국민적 공감대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예고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세부담 변화를 납세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통합 공시가격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