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푹하던 날씨가 최근 겨울 못지않은 추위를 몰고 왔다. 따뜻해야 할 봄철에 추위가 반갑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을 상쾌하게 해줬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서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소군원(昭君怨)’에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읊었다. 나쁜 대기질 탓에 ‘봄이 왔어도 봄이 아닌’ 계절이 요즘이다. 3월 들어 기온이 올라가며 추위가 한발 물러갔을 때 본격적인 ‘미세먼지의 계절’이 찾아왔음을 실감했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탓에 바깥세상은 ‘위험’했다. 수시로 휴대전화에 울려대는 미세먼지 경보는 나들이의 설렘마저 빼앗아갔다. 미세먼지 공포가 짙게 깔리면서 ‘파란 하늘’ ‘맑은 공기’ 등 ‘청정 환경’이 여행지 선택에서 최우선 고려 조건으로 부각되고 있다. 여행업계는 자칫 야외활동이 제한돼 여행객이 줄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제주까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상황이니 국내에서는 더 이상 미세먼지를 피할 곳도 없는 셈이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불안감을 느끼며 ‘다시 한국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뿌연 하늘이 흐린 날씨거나 짙은 안개 때문인 줄 알고 있던 외국인에게 미세먼지는 더욱 충격적이다. 미세먼지 경고 문자는 방한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발송되지만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한글로 된 문자를 외국인 관광객이 알아볼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실정이다. 여행이란 단어 앞에 ‘피서’와 ‘피한’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피미(避微)’라는 신조어가 붙는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공기가 깨끗한 북유럽이나 북미, 오세아니아로 미세먼지를 피해 떠나는 ‘피미 여행’을 고려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아시아 최대 온라인 여행사 트립닷컴에 따르면 미세먼지가 심했던 지난 2월 11일~3월 10일 초미세먼지 오염도가 낮은 10개국으로 떠나는 국내 예비 여행객의 항공권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평균 약 1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0개국은 글로벌 대기오염 조사기관 에어비주얼의 ‘2018 세계 대기질 보고서’ 기준으로 선정됐다.
검색량 증가 폭이 가장 컸던 나라는 포르투갈로, 약 230%나 치솟았다. 최근 각종 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주목받은 아름다운 경관뿐 아니라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이라는 매력이 영향을 미쳤다. 블로그와 SNS에서는 포르투갈 여행 중 만난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가 그립다는 후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호주(171% 상승)가 그 뒤를 이었다. 맑은 공기뿐 아니라 눈부신 햇살, 연중 온화한 날씨 등을 가진 덕분이다.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노르웨이와 초미세먼지 오염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난 아이슬란드가 약 132% 증가로 동률을 기록했다. 노르웨이가 소수점 아래에서 조금 더 높아 3위다. 청정국가로 알려진 핀란드는 약 116% 늘어나 5위에 랭크됐다. 이들은 모두 북유럽 국가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 방한 외래 관광객 수를 역대 최고치인 1800만명으로 잡았다. 2008년 689만명이던 외래 관광객을 2020년까지 2000만명으로 늘린다는 목표의 중간 과정이다. 하지만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인도 미세먼지 청정국을 골라 해외로 가는데 미세먼지로 뒤덮인 한국에 외국인 관광객이 올 것인가.
미세먼지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의지도 문제다. 목표와 계획만 있을 뿐 뚜렷한 유인책이 없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은 물론 서울에 집중된 외국인 관광객을 지방으로 보낼 콘텐츠도 부족하다. 정부는 다음 달 초 국가관광전략회의를 열 계획이다. 2017년 12월과 지난해 8월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관광전략회의가 열렸지만 현황 확인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아베 신조 총리 주도로 구체적인 목표 아래 5년 단위 관광진흥정책을 착실히 추진하고 있는 일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국내 여행업계에 봄은 언제 오려나.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