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담당 공무원이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규제는 폐지·완화된다. 이른바 ‘규제입증책임제’다.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시범실시한 결과 대상 규제 중 약 30.5%가 불필요하거나 규제 정도가 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올해 안에 1780여개의 행정규칙을 정비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7일 제11차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고 규제입증책임제 추진계획 및 시범실시 결과를 발표했다.
기업이 규제 폐지 필요성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규제의 존치 필요성을 입증하는 방식이다. 정부에서 왜 특정 규제가 필요한지 설명하지 못하면 사라지거나 규제 문턱을 낮춰야 한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건의됐던 제도다.
기재부는 지난 1월 23일부터 이달 7일까지 외국환 거래, 국가계약, 조달 분야에서 규제 272건을 선정해 규제입증책임제를 시범실시했다. 이 가운데 담당 공무원이 필요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규제는 83건이었다. 저축은행의 해외 송금·수금 업무를 금지한 게 대표적이다.
기재부 방기선 차관보는 “지난해 9월 외환제도 개선방안 발표 때 저축은행의 자금세탁 방지의무 이행능력 부족을 감안해 신중히 접근했는데, 이번에 일정 규모 이상의 우량 저축은행 중심으로 허용하는 쪽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자산 1조원 이상의 저축은행은 오는 5월부터 해외 송금·수금 업무를 취급할 수 있도록 규제를 낮추기로 했다.
현재 내국인에게만 허용된 우체국 해외 송금도 외국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바꾸기로 했다. 증권·카드사의 해외송금한도는 건당 3000달러에서 5000달러로, 연간 3만 달러에서 5만 달러로 각각 상향한다.
정부는 시범실시 결과를 토대로 규제입증책임제를 전 부처에 도입할 계획이다. 우선 각 부처에 민간전문가 위주의 규제입증위원회가 설치된다. 오는 5월까지 건의가 집중된 2, 3개 분야에서 약 480개 규제를 뽑아 1단계 정비작업을 벌인다. 이후 올해 말까지 나머지 1300여개의 규제 정비에 돌입한다.
방 차관보는 “환경이나 안전 분야의 경우에는 무분별하게 규제 완화를 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