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네타냐후에 골란 고원 ‘선물’… 국제 사회는 싸늘

입력 2019-03-27 04:0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스라엘의 골란 고원 영유권을 인정하는 선언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언문에서 “미국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의 일부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신화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령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공식 선언했다. 총선을 앞두고 부패 스캔들에 휩싸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구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큰 선물 보따리를 안겨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2020년 재선을 위해 유대계 표심을 결집할 필요성도 있다. 하지만 전쟁을 통한 영토 획득을 인정하지 않는 국제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어서 당사국인 시리아는 물론 국제사회가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방미 중인 네타냐후 총리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에 앞서 “이 일은 전임 대통령들이 해야 했던 일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은 하지 않았다”며 “내가 이 일을 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 역사적 순간, 이스라엘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훌륭한 친구를 둔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의 선거 지원을 위해 골란 고원을 선물로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는 다음 달 9일 총선을 앞두고 부패 스캔들이 불거져 5선 가도에 차질이 생긴 상황이다. 선거운동에 힘써야 할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을 방문한 것도 친미 행보를 통한 보수층 결집을 위해서다. 네타냐후 총리 측은 몇 주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로비를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2020년 재선에 성공하려면 미국 정계에서 영향력이 큰 유대계의 지원이 절실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포옹을 하고 뺨을 맞추며 인사하는 등 각별한 친밀감을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의 별명인 ‘비비’로 호칭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친애하는 벗 도널드’라고 불렀다. 네타냐후 총리는 기자회견 전 트럼프 대통령에게 “골란 고원에서 생산한 최상급 와인을 가져왔다”면서 “당신(트럼프 대통령)은 술을 마시지 않으니 참모들에게 주겠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을 겨냥한 이스라엘 검찰 수사를 염두에 둔 듯 “그들이 와인 때문에 조사를 벌이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농담을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바빌론에서 유대인을 구출하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허락한 페르시아 고레스왕에 비견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령 가자지구 공습으로 건물에서 불길이 솟구치는 모습. 신화뉴시스

하지만 두 사람의 ‘브로맨스’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골란 고원은 국제법적으로 시리아의 영토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일전쟁’으로 잘 알려진 3차 중동전쟁에서 골란 고원을 빼앗았지만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이를 불법 점령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골란 고원 영유권을 인정할 경우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을 비난할 근거도 사라진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안토니우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은) 골란 고원의 지위에 변동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골란 고원에 대한 유엔의 정책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반영돼 있다. 여기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왈리드 알 모알렘 시리아 외교장관은 국영TV 인터뷰에서 “미국의 결정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의 고립만 초래할 뿐”이라고 말했다. 알 모알렘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해적질을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고도 비난했다.

한편 팔레스타인 자치령 가자지구를 실효지배하는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을 가해 양측 간 무력충돌이 빚어졌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새벽 가자지구에서 로켓 1발이 날아와 민간인 7명이 부상을 입었고, 하마스 군사시설에 보복 공습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는 남은 방미 일정을 취소하고 조기 귀국해야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