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불황’과 ‘둔화’의 교차로에 섰다. 글로벌 ‘R(Recession·불황)의 공포’가 확산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은 출렁이고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안개’는 걷히지 않고 있다. ‘R의 공포’가 단순한 불안 심리인지, 곧 닥쳐올 현실인지를 두고 경제 전문가들 의견도 분분하다.
다만 한국 경제의 침체 국면이 심상치 않다. 반도체와 석유제품 등 주력 수출품목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고용시장은 악화일로다. 유럽과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진해지면서 각국이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으로서는 좋지 않은 신호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재정 지출, 민간 일자리 확대정책을 주문한다.
현재 한국 경제는 어디쯤에 서 있을까.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26일 “이제는 누가 봐도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며 “주요 선진국은 물론 미국마저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고 반등의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경기 비관론의 핵심은 ‘교역 부진’이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19년 2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물량지수는 127.76으로 전년 동월 대비 3.3% 떨어졌다. 수출물량지수가 하락하기는 지난해 9월(-4.9%) 이후 처음이다. 제조용 기계 등의 수입이 줄며 지난달 수입물량지수(108.62)는 1년 전보다 9.5%나 내려앉았다. 주 실장은 “정부가 재정 지출 확대를 넘어서 ‘적자 재정’ 편성까지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고용 절벽’도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률은 60.7%로 1년 전보다 0.1% 포인트 내리며 8년 만에 하락세로 전환됐다. 지난해 실업률은 3.8%로 전년 대비 0.1% 포인트 오르며 2014년부터 5년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 수출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고용지표가 나아질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민간 일자리를 확대하는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R의 공포’가 지나치다는 반론도 나온다. 김두언 KB증권 선임연구원은 “각국 중앙은행이 저물가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대책을 꺼낼 여력이 많다”며 “지난해 활황세를 보였던 경제지표가 조정을 받는 국면에서 경기 침체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단기간에 불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동결 방침을 밝히며 ‘비둘기(통화 완화 기조)’로 확실히 돌아섰고 미·중 무역 전쟁도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소비심리 등이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면 금융시장도 진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도 “국내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외부 충격이 없는 한 경기가 고꾸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연준의 전·현직 인사들도 ‘R의 공포’ 진화에 나섰다.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은 지난 25일(현지시간) 홍콩 크레디스위스 아시안 인베스트먼트 콘퍼런스에 참석해 미국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에 대해 “경기침체 신호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같은 행사에 참석한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미국 경제가 악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고 발언했다.
양민철 임주언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