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이 발행되기 이전인 당시에는 수표가 꽤 거래됐었다. 발행부터 거래, 회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기록되는 자기앞수표는 이제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소액결제 지급수단 가운데 자기앞수표의 이용 비중이 건수 기준으로 2008년 14.4%에서 지난해 0.6%로 줄었다고 26일 밝혔다. 한은은 “인터넷뱅킹과 신용카드의 발달, 2009년 6월부터 발행된 5만원권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자기앞수표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지급수단은 또 있다. 한때 인구 수 대비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다. 국내 ATM은 현재 12만1492대인데, 2013년 말 12만4236대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서서히 줄고 있다. ATM에서의 계좌이체, 현금인출 건수도 2015년 7억29만9000건에서 2017년 6억5412만8000건으로 감소했다.
은행들은 수익성을 고려해 ATM을 조금씩 줄이는 추세다. 하지만 현금이 여전히 중요한 지급수단인 현실 속에서 취약계층이 ‘사각지대’에 빠진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은은 저소득층 지역에 ATM을 정책적으로 확대하는 영국 사례를 제시하며 “ATM 축소가 고령층 및 저소득층의 현금 이용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회사가 아닌 밴(VAN) 사업자가 자체 운영하는 ATM은 늘고 있지만, 수수료가 900~1300원으로 은행권 ATM에 비해 높다.
수표·어음, ATM이 사라진 자리는 모바일 금융서비스가 채우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이용자들의 모바일뱅킹 이용 경험은 2017년 46.0%에서 지난해 57.9%로 늘었다. 젊은층은 물론 50대의 모바일뱅킹, 모바일지급 이용 경험도 급증했다. 가격 할인, 포인트 적립 등 경제적 혜택 및 서비스 편리성이 주요 이유였다.
건설사 대표가 국무총리에게 수표로 정치자금을 건네는 일, 복사한 마그네틱 카드로 ATM에서 돈을 빼내는 사기는 모두 구식이 됐다. 돈 거래의 상당 부분이 모바일로 바뀌면서 범죄도 사이버 공격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은은 불법 취득한 인증정보로 특정 금융회사에 75만회 이상 로그인을 시도한 사이버 공격이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여러 사이트에서 대개 동일한 사용자 계정(ID)과 비밀번호를 쓴다는 점에 착안한 시도였다.
지난해 인도에서는 비정상적인 지급 지시로 은행 계좌에서 돈이 실제로 빠져나가는 사고도 있었다. 결국 지급결제제도 참여기관이 금융 당국과 협의해 사이버 보안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한은은 강조한다. 비금융회사 주도로 새로운 금융서비스가 도입될 경우에도 ‘리스크’를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급결제제도의 미래는 무엇일까. 한은은 지급결제제도의 혁신으로 평가되는 암호화폐(가상화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해 조사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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